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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Nov 25. 2022

공간 산책

로컬기획서_1차





어느날 육조거리를 걷는다. 8월부터 대공사를 마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맞이하였다. 나 또한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광화문 인근을 배회한다. 따릉이는 그저 관상용이요, 춥디추운 이 거리를 그저 몸에 맡긴다. 꽁꽁 언 손을 주머니에 넣고 급하게 어디론가 찾아 나선다. 드디어 찾았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 광화문 인근에 있는 작은 전시회, 정확히 이야기하면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박물관이다.


예전부터 참으로 희한한 구조를 가진 벙커처럼 생겨서 한번 입장해보고 싶었다. 602번 버스를 타고 수국과 꽃들이 가득한 가로수 왼편을 응시하다 보면 돌담길이 어느새 안쪽으로 꺾이고 바로 돔처럼 생긴 곳을 발견하게 된다. 우연치 않게- 아니 어느새 내 몸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이동한다. 천천히 아주 사뿐하게 말이지.


지하로 내려간다. 코로나 검사와 함께 리플렛을 받고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곳을 더 깊숙이 들어간다.




No. 038291. 'Seoul Hall Of Urbanism & Architecture'


골든티켓을 얻었다.


3만명 가까이 이 정체 모를 박물관을 거쳐갔을 익명성의 사람들, 난 그저 4만명 안에 있는 나그네에 불과했다. 입장과 동시에 백화점 지하실 락커냄새 비스름한 요소들이 내 코를 자극했다. 건물의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꽤 깔끔했다. 아니- 일제강점기에 만든 지하벙커를 마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느낌이 여력했다. 혹시 몰라 내부의 싸늘한 시멘트 벽을 만져보았다. 신체 평균 온도 36.5도 보다 더 차가웠던 벽의 재질, 푸석푸석하고 뾰족한 요소들이 내 손끝 지문을 간지럽히고 있더라. 이럴때일수록 나만의 변태 감성이 쏟구치기 시작한다. 워킹하는 모델처럼 고분하고 템포를 맞추듯이 입구로 들어선다. 광활한 풍경은 내 시야를 더 자극했던 것은 덤이었지. 그렇지?


공간 매니아들에게_유일한 우리의 공간은 어디에?


First :: 공간 산책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란 녀석은 생각보다 무지막지하다. 그러니까- 무의식적이고 의식적인 상호소통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곳이란 말이다. 의식주 생활 모두 할 것 없이, 평소에 내가 인지하기 힘든 곳을 의도한 것처럼 표현하는 곳이랄까. 말이 참 어렵다. 그냥 사유하기 딱 좋은 곳이지. 내가 똥을 싸려면 화장실에 가야 하잖아, 침대에 싸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제각각 인지하는 순간 게슈탈트 붕괴처럼 공간의 흐트러짐이 생겨버린다. 즉, 공간의 창조가 뒤엉켜 나도 모르게 똥을 침대에서 싸버린다. 그것 또한 어느 주체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겠지만 말이야.


'공간 양상? 공간 양태? 공간 형성?'


뭐가 맞는 말일까? 비슷한 말이지만 역시 국어 어휘력은 한 끗 차이이다. 종이의 한 장, 두 장 차이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공간이 점차 진화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의미이다. 단순히 1차원적으로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뿐만 아니라, 매슬로 5단계 마지막처럼 자아실현을 위해 더욱 활성화시켜주는 곳이 바로 공간이란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1차원적 공간을 벗어나 2, 3차 공간을 넘고, 더더욱 4, 5차 공간까지 확장된다면 본질적인 자신을 PR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우리는 그것을 인프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하면 그곳이 바로 '로컬'이다.


'편하게 공간을 맞이하는 방법'


공간임을 인지하는 순간 그 환경에 맞는 행동을 한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특수한 공간임을 부정하고 편하게 임해야 한다는 말인데, 사실 인간들의 심리상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공간은 조금 더 나답다는 것을 더 확고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눈치보지 않고 새로운 의미를 다채롭게 부여받는 곳, 그곳이 바로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아찔한 이곳을 조금 더 부드럽게 이해해야 한다. 단순하고 불미스러운 인프라가 되지 않도록 차근차근 노력하는 마음의 자세, 참 쉬운 게 아니네. 내가 생각하는 공간이란 의미는 바로 그런 곳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공간들을 조금 더 친밀하게 다가가야 할까.


청파동을 거닐고 있는 경찰들_그들이 걷고 있는 이 공간은.


Second :: 건축 재생


'예전에 만리동과 중림동, 청파동을 거닐어 본 적이 있다.'


현재 윤석열 정권이 재개발에 혈안된 곳, 바로 용산구의 가장 오래된 동네이자 서울역 15번 출구 뒤편 허름한 동네가 이곳이다. 난 이곳이 참 마음에 든다. 뭐랄까- 생각보다 인위적이지 않고 굴곡진 도로와 포장이 덜 된, 되었다 해도 결국 수많은 차량과 인파에 의해 무너지고 차츰 깎아 내려간 이 골목길을 좋아한다. 이윽고 한 바퀴 돌다 보면 맞이하는 2층 허름한 이름 모를 카페에서 20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품고 바깥 구경을 하면 노을 진 후암동 남산을 구경할 수 있다. 그게 참말이냐고?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말을 말자. 난 그래서 용산구가 좋다. 이름 또한 예쁘다. 하지만 최근 이태원 참사로 인해 분위기가 삭막해졌지만 말이다. 그런 걸 배제한다면 원초적으로 고유의 레트로 건축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 분위기에 한몫하는 것은 목적 없는 사람들의 '공간 산책'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목적지가 있는 건축물, 아닌 건축물'


전자라면 참으로 피곤하다. 회색빛 감도는 강남, 여의도, 시청역을 예로 들자. '업무'와 '자본'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건축물들이 빼곡히 촘촘하게 블랙, 화이트톤을 이루며 서울의 부도심 역할을 대신한다. 명성에 걸맞게 사람들의 유동인구를 카운팅 할 수 없을 정도이며, 똑같은 레퍼토리와 매뉴얼이 정해진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어쩔 수 없이 그 건축물 사이로 배회한다. 어느새 긴장감과 책임감, 극도의 자본 노예 심리는 이 건축물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간다. 비둘기마저도 없다. 군대에 있는 꽃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가로수길은 그저 의미가 퇴색된 느낌.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그저 직장인들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용 안락함의 장소이며, 하루 밥 벌어 속을 달래는 소규모 투자자들의 마음은 금세 동강난다. 그런 건축물 사이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서울에서 말이다.


'목적지가 불분명한 고유의 건축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북촌마을, 서촌 마을, 경복궁 등등 제각각 사람들이 가는 이유가 명확하다. 어느샌가 관광지화되어 몸살을 겪고 있는 것은 덤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고유의 동네를 의도적으로 관광지화 하려는 심보를 가지고 있다.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은 상권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관광특구가 완성되고 그곳은 모든 사람들의 입소문과 SNS를 거쳐 또 다른 유명 동네로 거듭난다.


때로는 그런 곳을 거닐다 보면 예전 같지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우연치 않게 발견한 곳이야말로 더 감미로운 법인데 말이다. 난 그날따라 그러한 감성을 소멸시키기 위해 인적이 드문, 자연과 공생하는, 목적지가 불분명하고, 공간 생태계가 확실한 곳을 찾아다닌다.


'로컬 맛집'


온라인에서 시끌벅적한 곳을 찾는다. 예전 제주도 연돈이 회상된다. 맛이 참 좋다. 웨이팅을 한 만큼 맛이 기가 막힌다. 아뿔싸- 식당에 대한 평가를 해버렸다. 물론 맛집이라는 키워드에 옭아매어 말이다. 기사식당을 가고 싶었는데 왜 난 연돈을 찾았던 것일까. 그럴만한 가치를 품었다면 마케팅 논법에 의거하지 않고 더 순수하게 풀 수 있었는데 왜 난 벌써 별점도에 따라 상응하는 말을 한 것일까. 이래서 목적지가 당연하고 사람들이 많은 식당이 싫다.


허영만의 백반 기행처럼 그저 떠돌다가 마주치는 순수한 식당들이 더 마음에 와닿더라. 나의 대리만족일까? 왜 요즈음 따라 SNS를 보며 맛집을 검색하게 될까. 불현듯 '문찐'이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걱정되었나보다. 대중문화 찐따라는 뜻, 난 그저 그런 인물이 아닌데 말이다. 나 또한 어떤 맛집에 가려면 평가 요소가 인위적으로 버무려진 현대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속으로 달랜 고급 진 음식들은 어쩔 수 없다쳐도 이러한 상황에 만족하는 내가 참으로 아찔하고 부끄럽다.


시장에 간다.


요동치는 시끌벅적한 아줌마, 아저씨 상인분들의 아우성은 시장 곳곳에 넘쳐흐른다. 단순 판매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사람을 이끄는 순수한 1차적 마케팅 홍보는 사람의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SNS가 없기에 더 가능했던 시장의 아름다운 요소. 누군가가 그러한 점포들을 홍보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래야 입맛 따라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는 명분이 생기잖아. 난 그러한 곳이 참으로 좋다. 그래서 오늘도 그러한 곳을 간다. 화곡시장과 까치산시장, 우장산시장. 내가 자주 가던 시장은 오늘도 활기차다.


'충정아파트'


서울수집님이 예전에 팀 프로젝트로 활동하며 인스타그램에 자주 언급했던 곳.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최초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아파트였다. 물론 대부분 고위급 관리들, 혹은 친일파들을 위한 암묵적인 장소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 번은 충정로를 들리다 보면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마곡동도 다를 바 없었다. 예전에 수풀 가득한 군부대였고, 인근에 독수리 아파트라는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간부 거주용 아파트가 존재했다. 지금은 철거되었다. 아찔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곳을 하나의 문화 단지 및 공방으로 만들어진다면 좋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만 지자체에서 받아주는 우리들의 진지한 곡소리는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가보다. 소 귀에 경 읽기- 난 적어도 그래서 충정아파트만큼은 유일한 유형문화재이자 건축 문화재로 남길 간곡히 바란다. 그게 바로 도시재생의 일환이니까. 물론 이 아파트를 지속하기 위한 다양한 시민단체와 건축보존가들의 활동이 큰 두를 이루어야 한다. 나 또한 그분들의 생각을 하염없이 이해하고 곱씹으며 추후에 또 다른 옛 아파트들이 환상적으로 무너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기재한다.


내가 자주 걸었던 북촌의 이상적인 모습은_가짜 서울 사람이 바라본 북촌 사진


Third :: 서울 사람


난 서울 사람인데 서울 사람이 아니다.


서울에 대해 전혀 모른다. 서울에 대한 문화재와 유적지, 관광지도 잘 모른다. 서울에 대한 매력적인 요소도 잘 모른다. 그저 밥 벌어먹기 위한 하나의 인격체에 불과하다.


서울 사대문에 태어나지 않아 죄스럽다. 조선 유일한 한양 이씨의 후손이 아니라 조상님들께 죄스러울 따름이다. 족보 모를 사내가 서울에서 그저 자본을 모으고 있다. 결혼도 하며 인프라 생활을 여기서 누리겠다만 조상님들이 달갑지 않게 반겨준다.


그 이유는 뭐란 말인가-


아, 난 조선 한양 왕조의 자식이 아니라서, 아니면 사대문 양반 가문 후손이 아니라서, 아니면 그저 지방 사람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대뜸 서울 공화국에 대해 불신이 많아진다. 대한민국 오천만명 인구 중 1/5이 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얼마나 이 역설적인 모순인가. 바둥바둥 살아가는 햄스터가 밥을 먹기 위해 달려가는 실 같은 통로- 거기서 하나의 행복이란 밥을 그저 먹기 위해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그런 햄스터는 어느새 부귀와 명예를 누리고 2층 단칸방에 살게 된다. 애를 낳고 살아간다. 하지만 주인은 밥을 주지 않는다. 자식이 굶어죽어간다. 주인이란 녀석은 어느새 이사 가고 남은건 텅텅 빈 햄스터네 가족집, 그리고 이름 모를 사람들이 다시 그 집을 사간다. 어느새 햄스터는 식은땀을 흐르며 다시 그 주인에게 복종한다. 주인은 그러한 햄스터의 마음을 잘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밥만 준다. 포동포동 살이 찐 햄스터는 이윽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집을 탈출한다. 자식만 버린 채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일까. 심지어 햄스터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란 곳은 누구의 소유물일까? 집주인일까? 아니면 햄스터 세입자들일까. 어느새 햄스터 가족 옆으로 거대한 강아지 집들이 만들어진다. 부유한 녀석들, 덩치는 산만하면서 주인들은 햄스터보다 그 강아지들을 더 좋아한다. 그렇게 작정하고 몸을 바쳐왔던 일생 일대기 햄스터 가족은 처참한 하루를 맞이한다. 그게 서울 사람들이다.


을지로를 을지로라 인식하지 못할 때 찍은 사진_셔터만 찾는 김OO 작가님.


Forth :: Luv 을지로


어느샌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걷는다.


셔터가 올라간다. 믹싱과 왁싱 하는 소리가 여전하다. 자욱한 먼지 내음과 찢어질 듯한 소음이 광장시장과 을지로 곳곳에 울려 퍼진다. 오토바이는 무거운 짐을 부여잡고 퀵 배송을 간다. 낙원상가 인근을 배회하던 도를 믿습니까 아줌마들도 득실하다. 기타를 친다던 형광색 점퍼 형님들 또한 어느샌가 탑골공원으로 가 비둘기 밥을 준다.


그러한 곳이었다. 을지로는. 참으로 부질하기 짝이 없는 동네 룰 따위 모르는, 심지어 지자체에서 생활 반경에 대한 세칙조차 만들어주지 않은 듯한 '날 것' 그대로 '동네'였다. 귀금속 동네는 어느샌가 지도상에 사라졌다. 네이버지도를 켜도 그저 공백이 가득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지 오래-


어느 할아버지가 말한다. "아이고 OO씨 믹싱 상가가 닫히는구먼. 재개발 용역새끼들이 또 와서 지랄했겠구먼."


생각해보니 영화 국제시장 초반 황정민이 손자가 보는 앞에서 시장 활동을 가로막는 용역업체와 말싸움을 하는 장면과 겹치더라. 땀 흘리며 일궈냈던 을지로역, 을지로3가, 을지로4가 근처는 점점 리모델링되고 서서히 현대화된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그런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들. 어떠한 의미로 그러한 곳을 다시 맞이해야 할지 모르겠다. 만선 호프와 OB 베어의 옛 풍경을 사라진지 오래,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셔터 내린 어두컴컴한 을지로 골목, 만취한 젊은이들의 노가리 소리, 고된 일을 마치고 야외 노포에서 식사를 하는 어르신까지 모든 게 '날것 그대로'였는데 인위적인 공간으로 형성되어간다. 아직도 송해 선생님이 해장하러 들릴 2900원짜리 국밥집이 있을런지, 돈까스 좋아하는 허영만 선생님의 발자취가 담긴 곳도 거기에 있을런지.


그저 우리들은 그러한 운명에 맡긴다면 또 다시 서울에 적응하며 살아가야겠지. (아니 살아가겠지. 살아가야지.) 집주인은 배가 두둑이 불러터지며 그러한 곳을 서슴지 않게 거닐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7월에 우연치않게 들린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을 방문하며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이면에 잠긴 옛 건축과 공간, 장소를 곱씹는 의미로 기고한 일기입니다.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장소를 다시 기약하도록 하고, 현대 사회라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공간'은 '삶'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곳을 인지할 때 아름다울 것입니다.

'투기'와 '투자'의 형식적이고 수치적인 장소가 아니길 기대합니다.

그러한 세뇌 정책에 가로막힌 우리는 공간 예술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변화무쌍한 서울에 살고 있는 햄스터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주인공처럼 같은 마음일까요.

저도 참으로 궁금합니다.

생각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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