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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Dec 21. 2022

서울 601번 버스

망원동에 가고 있습니다.

늦은 새벽, 정확히 이른 아침이었다. 새하얀 눈망울들이 바깥을 향하여 재빠르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윽고 속으로 내뱉은 감탄사는 딱 한마디였다.


"망할 쓰레기..."


그래, 군대 때 한번 겪었던 평창 어느 대대 병장의 슬기로운 한탄은 이윽고 10년이 지난 후 그대로 다시 복고열풍처럼 내 마음을 한 번 더 대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난 눈이 싫다. 그냥 언제부터인가 그 작디작은 눈망울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11월은 유난히 추웠지만, 12월은 추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겨울잠을 자야하는 동물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더 침대 깊숙이 들어가고 싶은 계절이었다. 코로나에 걸린 이후, 후유증이 심하게 찾아왔다. 입맛은 둘째치고 그저 평범한 프리랜서와 회사원, 4대 보험이라고는 없는 그저 평범한 MZ세대 어느 청년은 몸을 부둥켜 일어나기 시작했다. 겨울이란 계절상 블루모드가 연신 내 마음을 강타했고 하염없이 속으로 갈망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삭였던 모든 감성과 감정은 이윽고 불타 올랐다. 그저 평범하고 싶었다.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길 간절히 바랐거든. 누군가가 물었다. 


"평범하면 인생이 재미가 없지 않아?"


"인생의 재미를 찾으려면 여행이라도 찾지 그래?"


"너 맨날 힐링타령하면서 여행하고 싶었잖아."


"이제 그 마음도 질린 거야?"


그렇지는 않다. 내심 응답과 반응을 3초 이내 해주고 싶었다만 어느샌가 그런 용기조차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아무래도 현실에 찌들어가는 나의 심보였을까. 아무튼 잡생각이 10분 동안 내 뉴런 한쪽에서 요동치기 시작했을 무렵, 그저 그런 현생을 찾으러 두꺼운 검은색 외투를 입고 밖을 나선다. 소스라치게 강타하는 눈망울들이 애써 싫어진다. 뽀드득 소리 나는 녀석들로부터 어떤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601번 버스를 타고 망원동으로 향한다. 

안국역을 배회했던 나는 오래간만에 이 정내음 넘치는 곳에 도착하길 내심 기대했다. 아니- 어쩌면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옷 사이에 껴입은 후줄근한 검은색 후드로 머리를 감싼다. 아침 7시 45분이 되자 염창역 근처 사람들이 601번 버스를 타기 위해 곤두박질친다. 마스크와 두꺼운 점퍼로 온몸을 감싼 채 어디론가 이동하는 는 시민들을 보면서 나 또한 어떠한 이유로 창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은 제각각 살아가는 이유가 있지. 이 분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또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 잡힌 나는 잠깐 눈을 감기로 한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차장 너머로 반쯤 언 한강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분명 눈을 감았지만 실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본 아침의 한기는 601번 버스 내부를 강타했고 모든 시선이 버스 외부로 향해있었다. 평범한 한강 또한 자신의 몸을 이기지 못하고 꽁꽁 언 상황으로 변질된다. 사람들의 눈망울이 무섭고 매섭다. 그리고 속 마음을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연신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출근길 마음은 여전한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성산대교 중간지를 넘는 버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 철부지 없는 정치인들의 아침 이슈는 터무니없이 감칠맛이 나질 않는다. 기사님은 그저 멍하니 전방 주시하며 조용히 라디오를 넘기신다. 주파수가 달라짐에 따라 아침 이슈는 여전히 반갑지가 않다. 그러다가 듣게 된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무던하고 한기 가득한 601번 버스 안을 맴돌 때 잠시 3년 전 기억을 상기하며 고개를 20도 내리게 되었다. 잠시나마 무의식 속에서 상쾌함을 맞이할 수 있었던 어느 한적한 오두막 감성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음악에 몸을 맡기며 서서히 솟구치는 싸릿눈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열기 가득했던 5분가량의 성산대교 위 601번 출근길 버스.

그렇게 난 망원동 위를 걷기 위해 하염없이 안달 난 애처럼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고 벨을 하염없이 3번 눌렀다. 정거장을 놓친다는 생각에 아찔했던 오전 7시 50분 무렵이었지. 마포구청역에 내리기 위해 잠시 일어섰다. 하체에 가득하게 실렸던 온기는 어느새 사라졌다. 생각보다 짧지만 강렬했던 크리스마스 전야의 아침 눈망울들의 흔적, 그리고 분위기 뒤엉켜 소스라친 따스한 601번 버스 기사님께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아찔했던 출근길은 다시 격동적으로 변모해갔다. 깊게 덮인 마포구청역 6호선 길 따라 차근차근 나만의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시 검은 외투 안에 입은 후드를 꺼냈다. 소복이 쌓인 녀석들을 보면서 뽀득뽀득 거리는 발걸음 따라 마음이 상쾌해져 갔다. 아침의 열기는 그렇게 소멸되었지만, 생명의 온기는 여전히 내 품 속에 가득하다.


그것이 망원동으로 향하는 나만의 출근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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