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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Jan 05. 2023

언덕 동네가 좋아서

로컬기획서_3차



PART1


용산구는 참으로 희한한 곳이다. 낯이 뜨겁기로 짝이 없는 울퉁불퉁한 언덕길은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곳. 두꺼운 짐을 멘 채로 오거리는 물론이오, 삼거리와 사거리를 서슴지 않게 다니는 사람들까지 어디를 둘러봐도 전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생각을 해보면 나 또한 생각의 전환을 위해 이 후암동의 일부 거리인 HBC(해방촌)을 많이 거닐어보았다. 때는 무려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참 신기한 곳이라 생각이 들던 무렵이었지.


용산구 중에서 유일하게 이태원과 보광동 다음으로 언덕길이 수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한 겨울, 힘겹게 이 언덕을 30분가량 업힐 이동을 하다 보면 마주치는 N타워(일명 남산타워)의 꼭대기 불빛이 삶의 지평선을 안내하듯이 조용하게 나를 다소곳이 바라보고 있었던 그때의 계절, 전 여자친구와 함께 유명하고 저명한 스페인 로컬 음식점을 들리겠답시고 힘겹게 1시간 동안 해방촌 곳곳을 배회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이라 그런지 나의 아저씨가 배경이 되었던 용산구의 백빈 건널목을 연상케하던 자그마한 저지대 단독주택들은 어느새 예술가들을 위한 작은 공방으로 바뀌었다.


2년 전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거닐었던 장소가 너무 그리워서 절친 K와 함께 임장이라고 읽고, 재개발 열풍이 붉어진 이 해방촌 일대를 거닐기 시작했다. 때는 무려 추운 1월이었다. 하염없이 거닐다가 눈이 덮인 너비가 지긋하게 짧은 이 거리를 조심스레 사진을 찍어보았다. K란 녀석은 감성적인 친구가 아니라 이런 부질없는 사진을 왜 찍는지 나에게 다그치듯이 이야기를 하였지만 '공간' 또한 하나의 '추억'으로 남길 바라는 나만의 철학적인 감성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돈이 없어도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단 듯이, 예전의 그 여자와의 안일했고 서글펐던, 하지만 하염없이 즐거웠던 추억은 공간이 되었고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잘 사는 사람은 추억을 돈으로 사겠지만, 아닌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그 추억의 동반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머문다고.


작년 7월, 후암동 어느 언덕길에서 마주친 작은 슈퍼 앞


PART2


언덕길은 삶의 고뇌와 바이오리듬에 얽힌 인생이 다 섞여있다. 나 또한 그 일부에 불과했다. 때로는 어르신들이 산책을 한답시고 언덕이 있는 산모퉁이나 길모퉁이, 혹은 비포장된 언덕길을 서슴지 않게 올라가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난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 물어본다. 포장된 도로 말고 왜 도대체 체력적으로 힘든 힐업을 올라가냐고 말이다. 그럴 때면 이 한마디를 툭 던진다. 삶의 자극이 없으면 죽은거나 마찬가지인데, 평탄하고 인공적인 180도 길을 걷는다면 (여기서 180도는 굴곡이 없는 일관적이고 매끈한 포장도로를 의미한다.) 오늘 내가 걸었던 이 길이 머릿속에 각인되겠느냐- 어차피 인생은 순례길과 비슷한데 말이야. 한 예로 Tvn에서 방영했던 차승원과 유해진이 나왔던 스페인 하숙을 보면서 우리는 순례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오붓하고 작은 식사를 제공하면서까지 왜 그렇게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한 공간은 '언덕'에서 발견되지. '언덕'이 없다면 평탄한 우리의 삶은 '발전'도 없고 '사망'한 것과 다름없어. 넌 그런 삶을 그저 피하지 않고 평탄한 길모퉁이처럼 살고 싶냐? - - -


이런 말이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도는 이유는, 그저 평탄했던 인공적인 호수 둘레길, 한 예로 잠실 올림픽공원처럼..? 물론 아닐 수도 있다만 적어도 시골길 비스름한 서서울 공원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어쩌면 나 또한 '언덕 중독자'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 말이야.-


부모님의 그러한 말은 나의 인생에서도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여전히 삶의 뜨거운 지평선을 바라보며 느닷없이 암막 커튼 쌓인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사무직처럼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느닷없이 변수 가득한 언덕 한복판 시련이 깃든 시베리아 벌판 언덕길에서 스스로 마주하며 이겨낼 것이냐. 그것은 너의 몫이며, 나의 인생의 지름길 따위는 버리라는 하나의 감지덕지 말씀이셨다. 난 그렇게 느닷없이 후자를 선택하면서 천천히, 아주 그리고 더 큰 감동을 얻기 위해 움직이려고 마음을 먹었다.


현재 내가 이동했던 마을의 언덕길만 하더라도 대략 30개가 넘는다.


골목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보통 성북동, 후암동, 청파동, 서촌, 북촌 마을 등 대부분 언덕과 비포장이 섞인 골목길을 하나씩 끼고 있었다. 그 동네의 주민들은 이미 이 마을들의 언덕길을 삶의 일관성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에서 후암동, 청파동 등 용산의 일부 골목길은 대부분 옛 노후화되고 지렁이처럼 고불고불한 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강서구 화곡동 주택단지 일대, 주소표시지 또한 10년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1월에 다시 가보았던 초등학생시절 친구네 집.


PART3


'길모퉁이 사람들'


어느샌가 이웃집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서옵쇼, 떡 하나 나눠먹기 좋았던 시대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독주택이라 읽고 저지대 서민 아파트라 읽는다. 그런 곳은 강서구 화곡동 옛 로드뷰에서 느닷없이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새 마곡동 재개발과 함께 강서구가 전면적으로 80프로 아파트 대단지로 재탄생하였다. 물론 LG싸이언스파크, 서울 보타닉 파크(서울식물원) 등 나름 강서구민들을 위한 인프라가 서서히 발전되는 것을 내 눈으로 꼼꼼히 지켜보았다만, 예전 같지 않은 정 내음새는 느껴지질 않는다. 이 또한 빨간 벽돌 사이에 스며든 나의 추억 종잇조각은 사시사철 녹이 쓴 잔디처럼 점점 벌레들에게 갉아먹히기 이전으로 돌아가면 느닷없이 마주치는 오목 볼록한 화곡동 옛 언덕 골목이 연상된다.


화곡본동 언덕길, 그리고 동사무소 사람들.


잼민이 시절, 아니- 초딩시절 2003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복지센터라 불리기 이전 동사무소라 불리었다. 가면 XP 컴퓨터가 최신 컴퓨터요, 동사무소 사람들은 표정에 감각이 없었으며 그저 민원을 받아치기에 만무했던 당시 2000년대 초 그 순수했던 감성은 뭘로 읽힐 것인지. 그 사무실의 시멘트 덕지덕지 붇은 냄새는 아직도 아련하게 콧속을 배회한다. 이마트 B1층에서 맡았던 시멘트 썩은 냄새는 여전히 당시 추억을 연장하게 해주었다. 어머니와 함께 갓 고등학생이 된 나를 동사무소로 이동하게 해주었던 당시 화곡동 재개발 시절, 빨간 낮은 담벼락이 무너지고, 3층이 최고층으로 믿어왔던 ㅁ자 옛 오피스텔은 서서히 사라져간다. 이름하여 새로운 오피스텔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곡동은 이제 옛 빨간 저지대 단독주택 단지가 아니다. 고층화된 아파트 일부를 머금고 있었던 우장산동의 시선과 영역이 점차 이 동네로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할 때 비로소 내가 긴 팔을 뻗칠 수 있었던 동사무소 담벼락 감나무는 톱에 잘려 없어진지 오래였고, 이제 노상방뇨를 서슴지 했던 동사무소 인근 길모퉁이는 하나의 주차장이 되었다.


초록마을로2길, 나의 옛 집이 있었던 풍요로웠던 공간이자 추억.


치환되었다. 20살이 되어 그 화곡동 동사무소로 갔지만 예전 같지가 않았다. 내 생각은 그렇게 치환되었다.


감성적인 공간이 이제는 하나의 편의성을 제공해 줄 또 하나의 새로운 새시대 새세대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치환되었다.


그렇게 묻어져가고 나의 길모퉁이 떡 한 시루 나눠먹지 못했던 곳은 이제 어느새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길모퉁이 사람들은 이제 없다. 한편으로 어디로 갔을지 내심 기대도 안 한다. 그래서 더 정겨웠던 그 장소는 이제 흰 시멘트 일관적으로 채색된 자전거 공유 지대와 외곽 공용 주차장이 되어 아직도 나에게 눈물 젖은 떡을 줄 것처럼 그러한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은 아직도 이름을 붙이고 있다.


'길모퉁이 흔적들'


-


PART4


다시 돌아가면 해방촌 사람들도 내가 함께 인생을 즐겼던 사람들과 비슷하다. 화곡동에서 연민 가득했던 길모퉁이 이웃들은 물론이오, 소나무 공원에서 하염없이 일탈을 공유했던 고딩 친구들, 조금 더 이동하면 마주치는 화곡6동과 화곡본동의 마지노선인 농협 프라자까지 아직도 머릿속에 각인된다. 좀만 더 가면 봉제산이 나온다. 그 언덕 자락에는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이 언덕길을 자주 배회했고, 이제는 K와 함께 작년 1월 기억을 머금으며 해방촌 언덕을 추억 삼아 이 글을 적는다. 여자친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적어도 이 글을 보며 공간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기에 안성맞춤인 로컬 글귀 맛집이 되길 간곡히 기대하며 이만.


#갓혁의일기 #로컬크리에이터 #로컬에디터 #재개발 #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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