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세 시. 다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새벽의 의식.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미 내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을 뜨기도 전에 손은 이불을 걷어내고, 발은 침대를 향해 내디뎠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작은 몸을 안아 올리자 울음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그러나 곧 다시 시작된 울음. 배고픔인지, 기저귀가 불편한지, 아니면 그저 엄마의 품이 그리운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작은 존재 앞에서, 나는 매일 밤 혼란스러운 수수께끼를 풀고 있었다.
처음 이 울음소리를 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이 깊어가면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내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이 작은 생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그 아픔이나 불편함을 덜어줄 수 있는지 몰랐다.
그날 밤, 나는 끊임없이 아이를 안고, 달래고,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었지만,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새벽녘, 지친 몸으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나의 내면도 깊어졌다. 아이를 달래지 못하는 무력감은 점점 더 깊은 불안으로 이어졌다. '내가 이렇게 아이의 울음소리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데, 앞으로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이 내 마음을 채웠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아팠을 때, 슬펐을 때, 그리고 그저 투정을 부렸을 때 보여주셨던 그 인내심. 어머니도 이런 밤을 보내셨을까? 나처럼 불안해하고 자책하며,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를 달래려 노력하셨을까?
그 생각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나보다 앞서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들도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결국 해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서툴고 불완전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부모가 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는 사실.
밤이 계속되고, 그 밤들이 모여 주가 되고, 달이 되면서 나는 조금씩 변화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진 다양한 뉘앙스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배고픔의 울음, 졸음의 울음, 불편함의 울음, 그리고 때로는 그저 엄마의 품이 그리워 우는 울음까지.
변화는 아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도 변하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에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했던 나였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 '모르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때로는 답을 알지 못해도,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한밤중의 울음소리가 계속될 때면서, 나는 점점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를 안고 창가로 가서 밤하늘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이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분명히 의미가 있음을 믿게 되었다.
"엄마가 여기 있어. 들어줄게, 네 이야기."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아이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불안하고 두려운 아이에게도,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우리는 함께 이 시간을 지나갈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한밤중의 울음소리는 단순히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거울이라는 것. 그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방식, 그 소리를 듣는 마음가짐, 그리고 그 순간에 발견하는 내면의 자원들.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그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본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밤마다 울음소리에 깨어나면서, 나는 내 안에 있던 인내심을 만났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발견한 끈기도 만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위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사랑도 만났다. 이것들은 모두 내 안에 있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내 영혼의 가장 깊은 부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그것은 내가 살아온 방식, 내가 사랑받아온 방식,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식이 모두 담겨 있는 응답이다.
간혹 정말 지치고 힘든 밤이 있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밤,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는 밤. 그런 밤에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같은 답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부모.'
울음소리는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첫 번째 언어다. 그 언어를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첫 번째 선물이자,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배움 인지도 모른다.
한밤의 울음소리는 어쩌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교향곡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불협화음처럼 들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발견하게 되는 그런 교향곡. 그리고 그 음악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춤추고, 배우고, 성장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