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어섰을 때, 우리 둘 다 놀랐다. 아이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서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 작은 몸이 이미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열한 달을 갓 넘긴 어느 오후, 소파 끝을 붙잡고 있던 아이가 문득 손을 놓았다. 그리고 세 걸음을 내디디고는 바닥으로 엉덩이를 찧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아이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을 기다려왔으면서도, 막상 그 순간이 오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은 느낌. 어제까지만 해도 이불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두 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첫 걸음 이후, 세상은 급속도로 변했다. 아니,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세상이 넓어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 품, 아기 침대, 거실 바닥과 같은 한정된 공간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집 안 곳곳이 모험의 대상이 되었다. 소파 밑, 책장 사이, 부엌 문턱, 심지어 화장실까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역이 한순간에 몇 배로 늘어났다.
"조심해, 거기 위험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 아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찾았고, 나는 끊임없이 불안했다. 테이블 모서리, 콘센트, 계단, 문틈... 집 안 곳곳이 갑자기 위험천만한 장소로 변했다. 내가 살던 이 평화로운 공간이 어쩌면 이렇게 위험한 요소로 가득 차 있었는지, 아이가 걷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모서리 보호대를 붙이고, 콘센트 덮개를 설치하고, 서랍에 안전장치를 달았다. 그럼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의 활동 반경은 나의 예상을 항상 한 발 앞서갔다. 어제까지 닿지 않던 곳에 오늘은 손이 닿고, 어제까지 올라가지 못하던 높이를 오늘은 가뿐히 정복했다.
걷기 시작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균형을 잃을 것 같은 느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설레는 마음. 아이의 매일이 새로운 도전과 발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도 신선한 활력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소파에서 미끄러져 이마를 바닥에 부딪혔다. 크게 울며 내게 달려왔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마에는 금세 붉은 혹이 돋아났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왜 아프지? 왜 이런 일이 생기지?'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이면서, 문득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처음 걸음마를 떼던 나를 지켜보며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분명 지금의 나처럼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넘어져 울 때면, 지금 내가 그러하듯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순환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서툰 걸음으로 시작해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오늘의 내가 아이를 지켜보듯, 어제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았고, 내일의 누군가가 또 다른 이를 지켜볼 것이다.
아이의 이마에 난 혹을 보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디까지 보호하고, 어디서부터 경험하게 해야 할까?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이 옳은 일일까?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불안은 단순히 아이의 안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 통제력 밖으로 벗어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이의 세계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놀이까지. 하지만 이제 아이는 스스로 움직이고, 선택하고,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 의도와는 다른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어느 날 저녁, 아이가 자고 난 후 거실에 앉아 그날의 일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책장에서 책을 모두 끄집어내고, 화분 흙을 파헤치고, 서랍에서 온갖 물건을 꺼내던 아이의 모습. 하루 종일 "안 돼", "조심해", "위험해"를 반복하는 내 목소리. 문득 내가 너무 통제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아이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억누르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 생각은 나를 더 깊은 성찰로 이끌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새로운 도전 앞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안전한 영역에 머무르려 하는가, 아니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가?
어릴 적 나는 꽤 모험적인 아이였다. 높은 나무에 올라가기를 좋아했고, 처음 가는 길을 탐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안전한 선택, 확실한 경로를 선호하게 되었다. 익숙함과 안정성이 내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아이가 첫 걸음을 떼고 넘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잊고 있던 나의 일부를 다시 만났다. 도전과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 그것은 내가 점점 잃어가고 있던 삶의 태도였다.
아이의 걸음마는 단순한 신체적 발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립을 향한 첫 번째 선언이었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 삶을 다시 돌아보는 거울이었다.
결국 나는 조금 다른 접근법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물론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유지하되,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조금 더 넓혀주기로 한 것이다. 책장 아래쪽 칸은 아이가 마음대로 탐험할 수 있도록 아이의 책들로 채웠고, 부엌에는 아이가 안전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플라스틱 그릇들을 모아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말투를 바꾸었다. "안 돼"와 "조심해" 대신, "와, 그걸 발견했구나!", "어떻게 하고 싶니?",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려 노력했다.
변화는 놀라웠다. 아이는 여전히 넘어지고 부딪혔지만, 그 빈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고 조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가구 모서리에 가까이 갔다가도 천천히 돌아서 지나가는 모습, 계단 앞에서 잠시 멈춰 상황을 살피는 모습.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변했다. 아이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통제하려는 조바심 대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여유가 생겼다.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관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통제력을 조금 내려놓자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아이의 걸음마가 시작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우리는 함께 공원에 갔다. 잔디밭에 아이를 내려놓았더니, 처음에는 주변을 조심스레 살펴보다가 이내 자신감 있게 걷기 시작했다. 넘어지기도 했지만, 곧바로 일어나 다시 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이는 이미 중요한 삶의 지혜를 체득하고 있다는 것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법.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일기를 썼다.
"오늘 아이는 스무 번쯤 넘어졌다. 그리고 스무 번 모두 다시 일어났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몇 번이나 다시 일어섰을까? 넘어짐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이는 나에게 잊고 있던 용기를 다시 가르쳐주고 있다."
첫 걸음마부터 시작된 아이의 모험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매일 새로운 도전, 매일 새로운 발견. 아이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지고, 그 안에서 아이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때로는 아이의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가 나의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부모'라는 여정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통해 변화한다.
아이의 첫 걸음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균형'의 중요성일 것이다. 보호와 자유 사이의 균형, 안전과 모험 사이의 균형, 통제와 수용 사이의 균형. 그리고 그 균형은 절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찾아가야 하는 것임을.
오늘도 아이는 새로운 도전을 향해 걸어간다. 때로는 위태롭게, 때로는 넘어지며, 하지만 항상 용기 있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 역시 내 삶 속에서 잊고 있던 도전의 즐거움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첫 걸음. 그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