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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만 나오면

by 부만나

아이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잊고 있던 무언가를 일깨워준다. 규칙과 관습에 익숙해진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순수한 반응은 신선한 충격이자 깨달음이 된다.


특히 두 살 무렵 아이들의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하고 꾸밈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딸아이가 보여준 거리에서의 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시장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제자리에서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어머, 귀엽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단발머리에 예쁜 원피스를 입은 우리 딸은 그런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신나게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작은 몸이 음악에 맞춰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인형같이 예뻐 보였다. 그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쉽게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아이의 '거리 댄스'는 일상이 되었다. 백화점 엘리베이터에서 흘러나오는 안내 멜로디에도, 지하철역에 들어서며 들리는 전철 도착 알림음에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재즈에도 반응했다. 아이에게 모든 소리는 춤을 추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처음에는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백화점 한복판에서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하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아이를 제지해야 할지 그냥 두어야 할지 고민됐다. 남들 앞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이 어색했다.


"여기선 조용히 해야지."


한 번은 그렇게 말했더니, 아이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걸 빼앗긴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마음이 찡했다. 세상의 작은 소리에도 기쁨을 느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의 순수함은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


하루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옆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아이가 또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리듬감 있게 움직였다. 단발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원피스 자락이 나풀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웃으며 지켜보았다. 우리 딸의 자연스러운 춤사위에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춤추게 내버려 두면 어떨까?' 늘 규칙과 체면을 중시하던 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공원에 가면 아이는 더욱 자유롭게 춤을 췄다. 멀리서 버스킹 소리가 들려오면 제일 먼저 반응하는 건 언제나 우리 아이였다. 딸의 즐거운 모습을 보며 나도 종종 발끝으로 리듬을 타보곤 했다. 학창 시절 춤을 좋아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순수한 즐거움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 덕분에, 나도 조금씩 다시 그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자랐고, 이제는 더 이상 거리에서 음악이 들린다고 춤을 추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가끔 그때 그 순수했던 모습이 그립기도 하다. 마치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다시 숨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아쉬운 것만은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지금도 가끔, 두 살 때 거리에서 춤추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세상은 원래 흥겨운 춤을 출만한 곳이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그것을 잊어버리게 될 뿐.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것은, 아마도 그 잊고 있던 진실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때로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싶은 마음, 세상의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순수한 감성을 잃지 않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 역시, 그 바람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이 들리면 마음만이라도 춤을 추는 그런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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