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두 살이 되던 해,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때가 있었다. 다행히 집에서 할 수있는 일이었지만,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일의 효율을 위해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 어린이집을 알아보던 날, 아이는 새로운 환경이 신기했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난감도 만지고, 그림책도 살펴보았다. 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이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등원하는 첫날은 달랐다.
"엄마, 가지 마..."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얼굴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선생님께 아이를 넘기는 순간,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내 옷자락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금방 데리러 올게.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며 억지로 아이의 손을 떼어내고 돌아서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린이집을 나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내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 떠올랐다.
그날 오후,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이의 눈은 여전히 붉어 있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참을 울다가 겨우 진정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는 내 품에 파고들었다. 마치 내가 또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런 상황이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아침마다 아이의 눈물,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일할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데려온 후 함께 이불 속에 누워 울기도 했다.
하루는 등원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또 가야 돼?"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 순간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네 살 때였을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나는 고모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며칠만 있을 거라고 했지만, 그 '며칠'이 몇 달로 늘어났다. 낯선 집, 낯선 침대, 낯설게 느껴지는 가족들. 매일 밤 이불 속에서 몰래 울었던 기억이 났다. 어머니가 언제 돌아오실지, 혹시 나를 잊어버리시진 않을지 두려웠다.
그 시간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성인이 된 후에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내 안에 남아있는 어떤 구멍, 채워지지 않는 어떤 불안감의 근원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누군가 떠날까봐,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어린이집 앞에서 나를 놓지 않으려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의 눈물이 더 가슴 아팠는지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오늘은 안 가도 돼. 엄마랑 같이 있자."
결국 우리는 어린이집을 그만뒀다. 집에서 일하니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도 일할 수 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할 때는 일을 잠시 멈춰야 했고, 중요한 업무가 있을 때는 아이에게 혼자 놀이를 하도록 부탁해야 했다. 효율은 떨어졌지만, 아이의 눈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든 후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과잉보호하는 건지, 아니면 적절한 결정을 내린 건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의 눈물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상처가 아이에게 대물림되지 않길 바란다는 것.
그날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
"오늘 아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났다.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내가 경험했던 그 불안감을 아이도 느끼고 있었다. 내 아이가 겪는 분리 불안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어린아이도 함께 울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치유받지 못한 그 불안감이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집에서 일할 수 있어서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 이제 그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울며 매달리던 그 작은 아이가 어느새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가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면 아이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쩌면 그때의 결정이 아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아이가 안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성인으로 자란 것을 보면, 그 눈물의 시간을 함께 견뎌준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다.
아이가 독립하여 집을 떠났을 때,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엄마를 떠나는 시간'을 경험했다. 이번에는 내가 아이를 어딘가에 두고 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빈 방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분리가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가끔 문득 생각한다.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어머니와의 이별이, 어쩌면 내 아이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겪었던 상처가 아이에게는 전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조금 더 단단히 아이를 붙잡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 역할이 되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가끔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 어쩌면 부모됨의 여정은 끊임없이 '떠나보내기'를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두 살 때 어린이집 앞에서부터,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 만나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도 함께 자라났고, 오래된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기도 했다. 그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면,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두 살배기 아이의 눈물, 그리고 그 눈물을 통해 만났던 내 안의 어린 시절. 부모가 되어 만난 나는, 어쩌면 그 시간을 통해 조금씩 치유되어 왔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