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 큰아이가 뭔가에 상처받은 듯했다. 살며시 방문을 열었을 때, 아이는 울다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엄마. 별거 아니야."
울면서도 눈치를 보는 아이. 그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다. 특히 슬픔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은 더욱 그랬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늘 '괜찮은 아이'로 살았다. 슬퍼도 울지 않고, 화가 나도 참았다. 가끔은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듯 울음으로 터져 나왔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더 큰 죄책감을 느꼈다.
"왜 우니?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누군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그 울음의 이유를 설명할 말도 찾지 못했다. 그저 눈물을 멈추기 위해 애썼다.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았을 때도, 나는 여전히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지 몰랐다.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책에서 읽은 이론과 실제 삶은 달랐다. 이론적으로는 "아이들에게 감정 표현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아이가 울 때면 나도 모르게 불편해했다.
"울지 마, 괜찮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고, 아이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나는 더 빨리 그것을 진정시키려 했다. 내 어린 시절처럼, 감정은 빨리 정리되어야 할 '문제'로 여겨졌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 아이들도 울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울다가도 누군가 방에 들어오면 급히 눈물을 훔치고,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모습.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패턴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는데, 내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던 그 순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울 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울음을 멈추게 하려 했다. 내 표정은 굳어지고, 목소리는 단단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직접적으로 '울지 마'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내 모든 행동은 '빨리 그치면 좋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 깨달음에 나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감정 표현에 제한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는 "울어도 괜찮아"라고 했지만, 내 얼굴과 몸짓, 목소리는 "빨리 그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여전히 타인의 감정, 특히 슬픔이나 분노에 불편함을 느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내 안의 어떤 불안이 함께 커졌다. 마치 그 감정이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로 번질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여전히 내 감정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괜찮은 엄마'로 있으려 했다. 슬프거나 화가 나도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고 참았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자라왔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돼"라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내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큰아이는 일을 하며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아이들이 독립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내 감정 표현 방식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 더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마다,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노력한다. 아이들도 점점 더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려 노력한다. 아이들의 감정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내 감정도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에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고마워. 엄마가 슬플 때 네게 말할게."
그날 밤,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었다.
"오늘 나는 아이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내가 어릴 때 배우지 못했던 것을, 이제 와서 아이를 통해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결국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정 표현이 어려웠던 이유는 복잡했다. 어린 시절의 환경, 주변의 기대, 그리고 내 안의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나는 감정을 보이는 것이 약함의 표시라고 배웠다. 특히 울음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 오십의 나이에 깨닫는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와 강함의 표시였다는 것을. 내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히 '울지 않는 습관' 이상의 것이었다.
관계에서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내 진짜 감정을 말하는 대신 "괜찮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친밀함을 두려워했고, 누군가 내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관계는 늘 일정 수준 이상 깊어지지 않았다.
일에서는 완벽주의로 나타났다. 감정을 억누르는 버릇이 일에 대한 태도로 이어져,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늘 긴장 상태였고, 일을 즐기기보다는 견디는 느낌이었다.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통, 소화불량, 만성 피로가 늘 따라다녔다. 몸이 내가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을 대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은 나 자신과의 관계였다. 내 감정이 뭔지 알 수 없으니, 내가 진짜 원하는 것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닌 관찰자로 살아왔다.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독립한 후에야 비로소 나는 내 감정 표현 방식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더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의 독립은 나에게도 일종의 해방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감정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어지자, 비로소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큰아이가 얼마 전 전화로 말했다.
"엄마, 요즘 눈물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울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 말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는 내가 오랫동안 배우지 못했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감정은 흐르는 물과 같다. 막으면 막을수록 어딘가에서 범람하게 되어 있다. 울면서도 눈치 보는 아이 었던 나는, 이제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내 가장 큰 스승임을 깨닫는다.
어릴 때 울 때마다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우니?"라고 묻던 목소리가 지금도 가끔 내 안에서 들린다. 이제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는 울 일이 많아. 그리고 울어도 괜찮아."
비로소 나는 감정의 깊은 틀에서 벗어나 해방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느낀다. 그동안 내 감정을 가두어두었던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이 내게는 진정한 자유로움이다.
이 해방감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네 감정은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다." 이제 나는 이 메시지를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비록 그들이 독립했지만, 부모로서 전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감정의 자유일 것이다.
때로는 전화로, 때로는 함께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는 조금씩 변화된 내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내가 슬플 때는 "나 요즘 좀 슬퍼"라고 솔직히 말하고, 기쁠 때는 주저 없이 그 기쁨을 나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하지만, 조금씩 그들도 더 솔직해진다.
이것이 내 삶을 회복시키는 길이라는 확신이 있다.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의 무게를 내려놓고, 비로소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 너무 늦은 깨달음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이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서로에게 배움을 주고받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려 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내게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도. 감정의 언어를, 솔직함의 가치를,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이제 다시 시작한다. 울면서도 눈치 보던 그 어린아이에게, 그리고 그 아이의 모습을 닮은 나의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이제 울고 싶을 때 울자. 웃고 싶을 때 웃자. 그것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