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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나그네에게 차가운 바람을 선물하고, 바다에게는 깊은 휴식을 주는 계절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 한우리에게 이 겨울은 그저 도망치고 싶은 시린 계절일 뿐이었다. 복잡한 서울 생활에 지쳐 무작정 내려온 동해의 작은 마을. 파도 소리조차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 파던 그때, 나는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낡은 카페 ‘계절의 틈’으로 들어섰다.
딸랑, 맑은 종소리와 함께 훅 끼쳐오는 온기.
그리고 그곳 창가, 쏟아지는 겨울 햇살을 등지고 앉아 있는 한 남자.
“... 도현 오빠?”
카메라 렌즈를 닦다 멈칫하며 고개를 든 남자, 도현이었다. 수많은 계절을 돌고 돌아 이곳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사람. 그는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내가 가장 그리워했던 그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왔어, 우리야? 한참 기다렸잖아. 이번 겨울 바다가 딱 너처럼 쉬고 있길래.”
그의 웃는 얼굴을 마주한 순간, 얼어붙어 있던 나의 폐부 깊숙이 따뜻한 공기가 흘러 들어왔다. 지독하게 차가웠던 바람이 멈추고, 나는 비로소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내 숨통을 틔워준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반가움? 아니, 그건 사치였다.
"여긴... 어떻게 알고 있어요?"
내 목소리는 겨울바다처럼 차갑게 갈라져 나왔다. 도현 오빠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여전히 다정한 그 눈빛이 오히려 원망스러웠다. 내가 가장 초라해졌을 때, 가장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하필이면 왜 지금 당신에게 들켜야 하는 건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그 계절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나. 연락 한 통 없던 사람이 이제 와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웃고 있는 모습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야."
"부르지 마요. 오빠가 여기 왜 있는지,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보는지... 하나도 안 궁금하니까."
나는 뒤를 돌아 카페 문을 열고 다시 차가운 바람 속으로 걸어 나갔다. 등 뒤에서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다시 숨이 막혀왔다. 그 미소를 보면, 억지로 닫아 두었던 마음의 빗장이 단숨에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