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두 미소

by 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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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 오빠는 변하지 않았다. 5년 전 나를 버리고 떠날 때도, 그리고 오늘 다시 나타나 내 숨을 운운할 때도 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다. 나의 상처나 재하의 존재보다, 자신이 지금 나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우선인 사람.

​그 이기적인 모습 앞에서 내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오빠가 떠났던 이유가 거창한 운명 때문이 아니라, 결국 나보다 오빠 자신의 삶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겨울바람에 홀로 떨고 있을 때, 오빠는 자신의 계절을 찾아 떠났을 뿐이라는 그 단순하고도 잔인한 진실을.

​"오빠는 한 번이라도 내 숨이 가빠질 걸 걱정해 본 적 있어요?"
​내 냉정한 질문에 도현 오빠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나는 도현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재하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가장 차가운 시선으로 오빠를 꿰뚫어 보았다.

​"오빠가 말하는 그 '숨'은 오빠를 위한 거잖아. 내가 숨이 막히든 말든, 오빠가 보고 싶으니까 온 거잖아. 5년 전에도 지금도 오빠는 참... 끝까지 이기적이야."
​도현 오빠의 얼굴에서 다정한 미소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가려져 있던 오만함과 뒤늦은 후회가 뒤섞인 기괴한 표정이 들어앉았다.

​"그게 진실이야. 내가 오빠를 외면하고 싶었던 진짜 이유."

​나는 말을 마치고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재하의 손등 위로 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멈춰 서지 않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오빠의 낮은 신음 소리조차, 이제는 더 이상 나의 계절을 흔들지 못했다.

"오빠는 참 무책임해. 그때나 지금이나."
​내 입에서 나온 단어는 도현의 가슴에 날카로운 화살처럼 박혔다. 그는 무언가 해명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나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5년 전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지는 걸로 무책임했고, 지금은 내 일상을 헤집어 놓는 걸로 무책임해. 오빠가 나타나면 내가 다시 예전처럼 흔들릴 거라고 믿었어? 그게 얼마나 오만한 착각인지 아직도 몰라?"

​재하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재하는 묵묵히 내 곁을 지키며 나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주고 있었다. 그 든든한 온기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오빠가 버리고 간 그 겨울 속에서 혼자 숨 쉬는 법을 배웠어. 죽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든 살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얻어낸 소중한 일상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네 숨을 지키러 왔다'라고? 오빠가 뭔데?"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무책임하게 떠났으면, 끝까지 무책임하게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그게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어."
​도현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항상 세상을 다 아는 듯 여유롭던 그 '미소'는 이제 비참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그 비참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은 씻겨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다시는 오지 마요. 내 계절에 당신이 머물 자리는 이제 단 한 뼘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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