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성장

by 산속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의 키가 어느새 나의 머리 위를 훌쩍 넘어서 있습니다. 나보다 커진 어깨와 굵어진 목소리를 마주할 때마다 아이가 정말 자기 몫을 다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엄마인 나의 눈에는 여전히 갓 태어난 그날의 붉은 핏덩이 같은 모습으로, 아장아장 걷던 그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만 다가옵니다.

​그 옛날, 나의 엄마도 그러하셨습니다. 다 컸다고 생각한 내가 엄마에게 "나도 이제 알 거 다 알아!"라며 투정을 부리고 말대꾸를 할 때면, 엄마는 그저 웃으시며 나를 '강아지야', '아기야' 하고 부르셨지요. 그때는 그 부름이 왜 그리도 싫었을까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자기가 혼자서 다 컸다고 믿으며 당당하게 걷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느끼는 이 먹먹함의 정체를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아이의 그 대견한 독립심 뒤에서, 엄마는 아이가 잊고 있는 수만 번의 손길과 밤샘의 시간을 추억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혼자서 큰 줄 알겠지만, 그 성장의 마디마디에는 엄마의 기도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마 평생 모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나 또한 나의 엄마에게 그러했으니까요. 자기가 다 컸다고 믿는 아이의 그 건강한 자부심이 대견하고, 그 당당함이 고마워 나는 오늘도 아이를 보며 속으로 속삭입니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엄마인 나의 쓸모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숟가락질 하나, 신발 끈 하나까지 내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던 아이가, 이제는 내가 모르는 정보를 척척 찾아내고 오히려 나에게 세상의 변화를 가르쳐주곤 합니다.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묻지도 않고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담담히 말해주었을 때, 나는 대견함 뒤에 숨은 묘한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이제 정말 나 없이도 잘 해내겠구나'라는 안도감은, 역설적으로 '이제 나는 아이의 우주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구나'라는 외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이야말로 엄마가 완수해야 할 마지막 임무임을 깨닫습니다.

아이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닌, 조명을 비추는 스태프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나는 기꺼이 아이의 시야 밖으로 물러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화는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혹여나 나의 사랑이 아이의 앞길에 짐이 될까 봐 마음을 졸입니다. 하지만 이제 압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아이를 꽉 쥐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며 슬며시 손을 놓아주는 것임을요.

나의 엄마가 나에게 그러했듯, 나 또한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웃어주는 법을 배웁니다. 네가 혼자 컸다고 믿는 그 당당함이 꺾이지 않도록, 나는 영원히 너의 가장 따뜻한 집이자 변하지 않는 안식처로 남고 싶습니다. 그것이 비록 내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은 너를 향한, 엄마인 나의 마지막 욕심이자 순수한 소망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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