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로 읽는 식생활 지침 - 1화
저는 비둘기입니다. 올해 제 나이가 네 살입니다. 저희들의 수명이 보통 10년 정도이니, 지금 저의 나이는 사람으로 쳤을 때 40대쯤 되겠네요. 한창나이에서 이제 조금 꺾이는 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건강은 어떠냐고요? 지금은 건강합니다. ‘지금은 건강하다’면 예전에는 건강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성인병이라는 것이 있지요. 비둘기에게도 그런 병 비슷한 게 있는데, 굳이 이름 붙이자면 ‘성구병(成鳩病)’이 되겠네요. 사람들은 생활습관병이라고 하지요. 제가 바로 그 성구병, 즉 생활습관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살던 동네와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은 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산에서 살고 있다’면 예전에는 다른 데서 살았다는 뜻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저 아래 공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공원에서 사람들이 지어준 비둘기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산으로 올라와서 산에다 둥지를 짓고 살고 있지요. 여기로 올라온 지 1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왜 여기로 왔냐고요? 사연이 좀 깁니다.
저는 공원의 인공 둥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친구 비둘기들과 오손도손 재미있게 커왔지요.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먹을거리인데요, 걱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놀러나와서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가 사방에 널려 있었거든요. 주로 과자, 빵, 패스트푸드 같은 것이지요. 무척 맛있어요. 가끔 특식을 하는 날도 있죠. 소시지 같은 가공육이나 치킨 조각 등을 만난 날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희가 귀엽다고 먹던 음식을 던져주기도 해요.
“친구들아, 모여라! 놀자.”
날이 밝으면 저는 친구 비둘기들을 불러냅니다. 함께 산보를 하면서 사방에 널려 있는 음식들을 사이좋게 쪼아먹곤 했습니다. 가끔 짓궂은 사람을 만나면 놀라는 일도 있지만 안전을 위협받을 정도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공원에서의 이런 하루하루는 더없이 평화롭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 세계에도 영원한 평화와 행복은 없나 봐요. 문제는 엉뚱하게 제 몸 안에서 생겼습니다. 제가 두 살쯤 되었을 때예요.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피로가 엄습하더라고요. 걷기가 싫어지고 날개를 퍼덕거리는 데에도 힘이 부쳤습니다. 가슴에 알지 못할 통증 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걱정스럽게도 이 증상은 점점 잦아지는 양상이었습니다.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내가 왜 이러지? 벌써 노화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아직 두 살밖에 안 먹었는데. 이상하네.’
비둘기 두 살이면 사람 나이로는 20대쯤 됩니다. 한창나이죠. 몸은 이미 살이 쪄서 비만 상태였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혼자 터벅터벅 걷다 보니 저도 모르게 도달한 곳이 공원의 입구 쪽이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 사이에서 뭔가 펄럭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장의 플래카드였습니다. 그 플래카드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비둘기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태계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는 그 글귀를 천천히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비둘기가 사람이 준 먹이를 먹으면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건가? 왜지?’
아뿔싸! 그때 섬광처럼 저의 머리를 스치는 자각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 문제는 음식이다. 먹거리가 잘못된 것이다. 과자, 빵, 패스트푸드 같은 것들은 인간 세상에서 익히 알려진 비만식품이다. 인간들은 그런 식품들을 보통 정크푸드라고 말한다. 나도 그런 정크푸드를 먹고 커왔다. 그런 식품들은 인간을 병에 걸리게 하듯, 우리 비둘기에게도 병에 걸리게 할 것이 분명하다. 내가 지금 그 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 그게 바로 성구병인 것이다.’
며칠 전에 숲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만난 산비둘기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주는 먹이를 일절 먹지 않습니다. 아니 먹을 기회가 없습니다. 숲에서 풀씨나 벌레 따위를 찾아 먹습니다. 자연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척 건강해보였습니다. 성구병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나도 그럼 산에서 살아볼까.’
그렇습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먹거리를 바꾸는 일입니다. 이른바 식생활 개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원을 떠나야 합니다. 이제까지 제가 살아왔던, 인간들이 만들어준 정든 인공 둥지를 버려야 합니다.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연한 결단입니다. 건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요. 저는 곧바로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처음엔 무척 힘들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이 공원에서 먹던 인간세상의 정크푸드성 가공식품에 대한 갈망을 억제하는 일이었습니다. 대신 풀씨나 열매, 벌레 등을 찾아먹어야 했습니다.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적응을 했지요. 산비둘기들처럼 철저히 자연 식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은 어떠냐고요? 놀라지 마십시오.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만성피로 증상을 잊은 지 오래됐고 가슴 통증도 없어졌습니다. 배 가슴을 중심으로 덕지덕지 붙어 있던 군살들은 싹 빠져서 이제 힘차게 날갯짓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 자연 속에서 팔팔한 젊음을 만끽하며 살고 있답니다.
이제까지 저의 삶에서 가장 잘했던 일이 산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식생활을 바꾼 것입니다. 식생활이란 뭘까요. 배고파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하는 관행적인 행동일까요. 그렇지 않지요. 식생활은 내 몸에 필요한 에너지원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숭고한 생명활동의 하나지요. 가장 소중한 부위인 두뇌세포도 먹거리로 만들어지잖아요. 식생활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 과학백과 ♤
과도하게 가공한 가공식품은 심뇌혈관질환과 장질환, 우울증 등 여러 질병의 원인일 수 있다.
- G. Pagliai et al., “Consumption of ultra-processed foods and health statu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ritish Journal of Nutrition (2021), 125, 308–318
- Kevin Whelan et al., “Ultra-processed foods and food additives in gut health and disease” British Journal of Nutrition (2021), 125, 308–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