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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병수 Apr 08. 2024

소똥구리를 아시는지요

우화로 읽는 식생활 지침 - 2화

  소똥구리라는 곤충을 아시는지요. 제가 바로 그 소똥구리입니다. 저는 동물의 분변을 먹고 삽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소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소똥구리라고 부르죠. 저는 더러 말똥구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제가 말똥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동물의 분변을 먹고 산다고 해서 사람들은 저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제 모습도 조금은 우스운 면이 있습니다. 머리는 작고 몸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 데다 온통 시커멓지요. 하지만 저를 알고 나면 제가 얼마나 인간 세상에 유익한 곤충인지 잘 아실걸요.

  저는 집에 먹이를 쌓아두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물의 분변을 공 모양으로 둥글게 뭉쳐서 제가 살고 있는 땅속으로 가져와 저장해둡니다. 저의 거처에서 천천히 먹으려는 것이죠. 제가 원래 먹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곤충치고는 꽤나 대식가예요.

  저의 이런 습성이 지구촌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물의 분변은 질소 덩어리잖아요. 이 질소 성분을 땅속으로 신속하게 되돌려줘요. 당연히 토양을 기름지게 하여 식물이 잘 자라게 하고 강과 바다의 오염을 막아주죠. 또 동물의 분변에는 메탄이나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도 많이 들어 있는데, 이 나쁜 가스들을 땅속에 묻어둠으로써 대기 중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답니다. 성실한 농부이자 환경 지킴이인 셈이죠.

  이런 저에게 슬픈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종족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답니다. 예전에는 시골에 가보시면 길바닥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것이 저희들이었지요. 소똥을 경단처럼 만들어 물구나무를 선 채로 뒷발로 소똥 덩이를 굴리며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는 저희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도시 지역에도 저희가 나타나곤 했죠.



  지금은 어떤가요. 아무리 한적한 시골이라도 더 이상 저희 모습을 발견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보시려면 이제 사진이나 그림으로나 가능해요. 오죽하면 정부가 저희에게 현상금까지 내걸었다는 이야기가 들릴까요. 얼마 전에 저희 종족을 몽골에서 들여와 방사했다는 소식이 더 가슴 아프게 들립니다. 저희에게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고 인간 세상에도 큰 손실이죠. 듬직한 농부이자 환경지킴이를 잃은 결과니까요.

  중요한 것은 이유겠지요. 왜 저희가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저희들의 먹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소똥이 변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전에는 소들이 풀을 뜯어먹었잖아요. 저희는 풀을 먹은 소들의 분변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엔 소들이 풀 대신 다른 걸 주로 먹지요. 그게 사료 아닙니까. 대개 곡류로 만듭니다. 그런 걸 먹은 소들의 배설물은 저희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소의 사료를 곡류로만 만든다면 그나마 다행이에요. 저희가 멸종까지는 가지 않았을 겁니다. 곡류로 만든 사료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물질이 있지요. 인간들이 보통 말하는 사료첨가물이 그것입니다. 항생제, 항산화제, 호르몬제, 유화제 등 여러 화학물질들이 사료첨가물에 사용되지요. 이런 물질들은 저희에겐 무척 낯선 물질이에요. 이제까지 저희가 접해본 적이 없는 물질이거든요. 저희 몸이 그런 물질을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저희들의 멸종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먹거리의 중요성입니다. 먹거리가 잘못되면 종족을 유지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알려주고 있지요. 이는 저희 같은 곤충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희들은 생애주기가 짧기 때문에 잘못된 먹거리의 피해가 빨리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저희들의 불상사를 보면서 인간들도 각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음식도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잖아요. 가축의 사료에 사료첨가물이 사용된다면 인간들의 음식에는 식품첨가물이 사용됩니다. 사료첨가물과 식품첨가물은 뿌리가 같아요. 사료첨가물이 저희 소똥구리에게 낯선 물질인 만큼 식품첨가물도 인간들에게 낯선 물질이지요. 저희들의 불행이 인간들에게 단지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 과학백과 ♤

식품첨가물을 남용한 초가공식품이 여러 질병을 부르고 사망률을 높인다.

- G. Pagliai et al., "Consumption of ultra-processed foods and health statu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ritish Journal of Nutrition (2021), 125, 308–318

- Anaïs Rico-Campà et al., "Association between consumption of ultra-processed foods and all cause mortality: SUN prospective cohort study" BMJ. 2019 May 29:365:l1949. doi: 10.1136/bmj.l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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