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시를 만난 것은 대학에 다닐 때였다. 그 시의 화자처럼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던 시절이었기에, 그 시는 읽는 순간 외워 버릴 정도로 뇌리에 깊숙이 들어와 박혔다.
그해 겨울, 나는 고향에 틀어박혀 있었다. 요즘엔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컴퓨터니 휴대폰이니 하는 것들이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기타 하나에 시집 몇 권을 들고 방학을 하자마자 고향에 내려갔던 터이다. 언덕 하나만 넘으면 서해 바다가 나타났지만, 언덕을 넘기 전에는 그냥 깊은 산골 마을이었다.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산골 마을은 짧은 겨울 해마저 길기만 했다. 방 안에서도 물그릇이 어는 흙벽 방에서 나는 이불을 어깨까지 뒤집어쓰고, 아버지가 쓰시던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읽거나, 시린 손끝을 호호 불어가며 새로 배운 기타 코드를 익히곤 했다.
고향 마을은 눈이 왔다 하면 무릎까지 빠지는 것이 예사인 곳이었다. 우리 마을까지는 아예 차가 다니지 않았고, 그나마 그 여자가 사는 마을에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도 눈길에 막혀 며칠째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 여자도 방학을 해서 집에 내려와 있을 것이었지만, 아직도 내 사랑이란 짝사랑일 뿐이었으므로, 나는 찾아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눈은 사흘을 두고 내렸다. 버스도 끊긴 눈 속을 뚫고 우체부는 다녔다. 읍내에 있는 우체국까지 가기 어려웠으므로, 사람들은 편지와 함께 우표값을 우체부에게 주고 편지를 부쳐줄 것을 부탁하곤 했다.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던 편지가 배달 사고를 일으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우리는 그 우체부를 믿었고, 그는 믿음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편지를 썼다. 아니,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그 시, ‘즐거운 편지’를 썼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므로 무엇을 보탤 필요가 없었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부었다.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