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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Feb 27. 2024

한 끼

흰샘의 그냥 그런 이야기

명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근무한 학교가 국립중앙도서관(줄여도 보통 ‘중도’라고 부른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이들이 일찍 하교하는 시험 기간에나 방학 때면 가끔씩 학교 후문을 나가 서래마을을 걸어 마을 꼭대기에 있는 ‘몽마르뜨공원’까지 산책을 하곤 했다. 그 아래가 바로 중도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값싸고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그때는 2500원이면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는데, 밥과 국, 김치에, 샐러드와 고기, 생선조림, 마른반찬 등이 식판에 다 담기 어려울 만큼 푸짐했다.    

  

'중도'의 식사비는 5천원으로 올라 있었다

그때 보았던 장면 하나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폐휴지를 줍는 노인이었다. 폐휴지 수레를 식당 옆 벽 쪽에 붙여놓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간다. 2500원을 당당히 내고 식권을 받아들고 내 앞에 섰다. 그런데 밥을 나보다 두 배도 넘게 푼다. 반찬도 마찬가지다. 저 노인이 저걸 한번에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가 앉은 테이블에서 한 칸 떨어진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천천히 밥과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그가 정말로 그 음식을 다 먹는지 지켜보고 싶어 일부러 천천히 식사를 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는 밥알 하나, 국물 한 수저 남기지 않고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저것이 저이의 유일한 하루 식사구나... 저 한 끼를 위해, 또한 저 한 끼의 힘으로, 주인을 닮아 바퀴마저 절룩이는 손수레를 끌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것이구나...      

'중도' 디지털도서관 입구

대학에 있는 후배가 도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준비가 만만치 않다. 우리 집에서 중도가 멀지 않은 탓에 내가 디지털 자료를 열람하고 조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성모병원 앞에서 버스를 내려 길을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중도가 보인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도서관에 가는 것은 또 얼마 만인가? 성모병원 뜰에 있는 산수유나무에는 가지 끝마다 노란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알알이 맺혔다. 차도와 인도를 나누는 화단엔 벌써 매발톱들이 새잎을 틔우고 있다. 아직 봄 언저리를 맴돌면서 반격을 노리는 겨울이 간간이 심술을 부리긴 하지만 봄볕이 완연했다.  하도 오랜만에 갔더니 로그인을 새로 하라는데 비번이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가 재설정을 하고서야 ‘휴면회원’의 족쇄가 풀렸다. 

사람은 없고 기계만 있다

사실 오늘 나는 연구 과제를 해결하러 간 것이 주 임무였지만, 내심 기대하는 것은 중도식당의 점심이었다. 그새 식사비는 5천 원으로 두 배가 올라 있었고, 반찬도 예전에 비해 훨씬 줄었다. 그래도 요즘에 5천 원짜리 밥이 어디 있는가? 감사하며 먹었다. 혹시나 해서 둘러보았지만, 폐휴지를 실은 손수레도, 그 주인도 오늘은 찾을 수 없었다. 요즘은 폐휴지를 산더미처럼 싣고 가 보아야 5천원 받기도 힘들다는데, 갈수록 힘든 분들은 더 힘든 세상이 되고 있는 듯해 공연히 마음이 서늘했다. 선거철 다가온다고 목련이 피면 어쩐다느니 목련이 지면 어쩐다느니 별 지X을 떨어 쌌는 정치하는 者들에게 허공에 어퍼컷 한 방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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