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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r 01. 2024

흰샘의 漢詩 이야기-水仙花

水仙花[수선화]

김영수(金永壽, 1829~1899)     


金盞玉臺最絶奇[금잔옥대최절기] 금색 잔에 옥빛 받침 수선화가 으뜸이라 

枕流漱石浴氷肌[침류수석욕빙기] 물베개 돌양치에 얼음에 씻은 듯 맑은 살갗

先春縱與梅爲友[선춘종여매위우] 봄에 앞서 피는 매화 벗할 만도 하건만

枯樹猶嫌土着枝[고수유혐토착지] 고목은 흙에 뿌리내린 가지를 싫어한다네


汲灌淸泉撑石奇[급관청천탱석기] 맑은 샘물 머금고 바위 기대 어여쁘니

凌波仙骨玉妃肌[능파선골옥비기] 능파 같은 뼈대에 옥비 같은 피부로다

蒜根薤葉雖相似[산근해엽수상사] 마늘 뿌리 부추잎과 언뜻 보면 비슷해도

獨立娉婷不借枝[독립빙정불차지] 우뚝 선 고운 꽃가지 오롯이 제 것일세

[번역: 흰샘]     

내 고향 선운사 뜨락에 핀 수선화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 시를 뒤지다가 조선 말기의 문신인 김영수의 시 ‘水仙花’를 발견했다. 똑같은 운(韻)으로 쓴 두 수인데, 수선화의 맑고 깨끗한 빛깔과 자태를 잘 표현했다. 첫째 수의 제1구에는 수선화의 별칭인 ‘금잔옥대’가 그대로 시어로 쓰였다. 제2구의 ‘枕流漱石’은 유명한 성어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정신과 자태를 일컫는 말이다. 제3구와 4구는 수선화와 더불어 이른봄에 피는 매화가, 땅에 바로 붙어 꽃을 피우는 수선화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다. 둘째 수의 반전을 위한 밑밥(?)으로 보이기도 한다. 둘째 수의 제2구 ‘凌波’와 ‘玉妃’는 모두 여신들을 가리킨다. 특히 능파는 물의 여신으로, 수선화의 이름이 水仙임을 재확인한다. 제3구와 4구는 수선화의 모습을 묘사했다. 뿌리(구근)는 마늘처럼 생겼고, 잎은 부추처럼 생겼지만, 우뚝 솟아나 피는 꽃대는 어디서도 빌려온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추사가 일찍이 수선화와 매화를 비교한 시를 지었거니와, 김영수의 시는 다분히 추사 시에 대한 오마주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 목판화

수선화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했지만 중부 이북에서는 볼 수 없었기에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고 있는 기록이 많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야생 수선화를 처음 본 듯하다. 그는 수선화 시의 서문에서, 제주 사람들은 지천으로 피는 수선화를 무슨 물건인 줄도 모르고 다 파서 버린다고 적었다. 그 기록을 보아도 수선화가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자생하던 꽃인 것을 알 수 있다.      


추사는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55세부터 63세까지 절해고도인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감수성 예민한 추사는 단번에 수선화의 매력에 빠졌을 것이다. 아마 추사는 이른 봄 햇살을 닮은 노란 수선화를 보며 막막한 마음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추사의 유배지 뜨락과 담장 아래에도, 충남 예산에 있는 추사 고택 뒤뜰에도 봄이면 수선화가 만발한다. 우리나라 문학과 그림에서 수선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 추사 이후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나는 몇 년 전 제주 추사 유배지 담장 밑에 굴러다니던 수선화 한 뿌리를 주워와 그것을 추사의 환생인 양 애지중지했다. 인터넷을 통해 수선화 구근 보관법과 심는 법, 기르는 방법 등을 공부하여 그대로 했지만, 잎만 무성하고 꽃은 피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3년 만에 드디어 올해 첫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분명 필 것이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우리집 발코니에서 필 준비를 마친 수선화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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