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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Apr 21. 2024

흰샘의 옥상텃밭 이야기_나의 반려식물들

오래된 아파트 옥상에 화분 몇 개를 올려놓고 ‘텃밭’을 가꾼지가 15년쯤 되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아파트에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는 바람에 잠정적으로 ‘폐농’을 했다. 화분도 절반은 버리고 흙도 다 쏟아 버렸다. 봄이 되자 다시 내 유전자에 인자된 ‘농심’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아파트는 아직도 ‘공사중’이지만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1. 냉이

일단 상자처럼 생긴 화분에 지난여름에 받아둔 냉이 씨앗을 뿌려 보기로 했다. 냉이야 아무 데서나 워낙 잘 자라니까 아마 씨앗도 발아를 잘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냉이는 나의 믿음대로 모조리 싹이 나서 화분을 가득 채워 버렸다. 일부를 솎아서 다른 화분에  옮겨 심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두 화분을 다시 가득 채웠다. 나물처럼 여린 냉이를 몇 번이나 솎아서 냉잇국을 끓여 먹었는데, 앞으로도 10번은 더 냉잇국을 먹을 수 있겠다. 아, 위대할손 나의 믿음이여!!     

냉이는 솎아도 솎아도 금세 자란다

2. 상추

나는 상추를 항상 씨앗부터 시작한다. 모종을 사다가 심은 적이 없다는 말이다. 씨앗은 고향에 갈 때 농협 공판장에서 사거나 전주에 갈 때 남문시장 종묘상에서 산다. 서울에서 파는 것은 씨앗도 변변치 않다. 생업과 취미의 차이는 상추씨 하나에도 그 현격함이 존재한다. 흙을 잘 골라 씨앗을 심고, 매일 물을 뿌려 주고, 첫싹이 언제 나오는지를 기다리는 것은 아침마다 설렘을 준다. 매일 아침을 설렘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1년 중 며칠이나 될 것인가? 한 달 전에 뿌린 씨앗이 드디어 싹이 트고, 간간이 내리는 봄비를 맞아 제법 상추의 모습을 띄기 시작하는 모습은 벅찬 감동을 준다. 요즘은 상추 모종도 비싸서 도시에서는 2~3포기에 천 원씩 한다. 씨앗은 2천 원짜리가 최소 2천 립(粒) 이상이니 씨앗 하나에 1원인 셈이다. 가성비 때문에도 나는 편한 모종 대신 귀찮고 오래 걸리는 씨앗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쫀쫀함이여!!  

상추가 제법 꼴을 갖춰간다. 검은색은 내가 만든 커피 찌꺼기 거름이다.

 

3. 바질

나는 수년 전까지 바질이 뭔지도 몰랐다. 알았더라도 나와는 관계 없는 식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지인에게서 바질로 만든 잼 같은 것을 선물로 받아왔다. ‘바질페스토’라 이름하는 것이었다. 먹어보니 독특하고 고급진 것이 내 취향과 수준에 딱 맞았다. 아내는 작은 화분에 심어진 바질도 두 포기 얻어왔다. 큰 화분에 옮겨심고 바질 기르는 방법을 검색하여 그대로 했더니 잘 자랐다. 잎을 따서 바질페스토를 서너 병이나 만들고, 한 그루는 잘 키워 씨앗을 받았다. 이듬해는 씨앗을 뿌려 발아를 시켰다. 바질은 20그루로 늘어났고, 아침마다 밥 대신 빵을 먹는 우리 부부는 1년 내내 빵에 바질페스토를 듬뿍 발라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당연히 올해도 36구짜리 묘판에 바질 씨앗을 심었다. 바질은 지중해에서 자라는 식물인지라 따스한 온도와 풍부한 햇볕을 필요로 한다. 우리집 발코니는 햇볕은 충분한데 아직 바질이 잘 자랄만큼 기온이 높지는 못했다. 그래도 서두른 것은 작년에 만들어 놓은 바질페스토가 바닥을 보인 까닭이었다. 아무려나 바질은 이름처럼 바지런하지 못하고,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 마냥 도대체 자라질 않았다. 4월 들어 날이 점점 따스해지자 그제야 떡잎 위에서 본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놈들을 또 잘 키워 독특하고 고급진 나의 취향과 수준을 마음껏 즐겨 보리라.

어서 자라라, 바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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