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흙길을 걸어본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발에 와 닿는 흙의 감촉은 부드럽고 차가웠다. 숲 그늘 아래를 걸을 때는 그 서늘함이 온몸에 전해져 왔다. 가끔 보이는 깨진 병조각을 확인하거나 우뚝 솟아 있는 돌을 피하기 위해 나는 온 신경을 걷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사람이 다니는 길(아니지 원래는 그들의 길이었을 것이다)을 필사적으로 가로지르는 벌레들을 만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밟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을 피해 지나가는 것도 맨발 걷기의 한 꼭지가 된다.
오늘은 첫날이라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1천보 정도를 걸었다. 내가 걷는 길은 관악산 기슭이라 약수터가 여럿 있다. 특히 공원 입구의 약수터는 예로부터 유명했다. 지금은 먹을 수 없는 물이 되었지만, 한때는 물이 좋아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줄을 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옆에 표석도 세워놓았다. 나름대로 아는 체를 하느라고 漢字로 쓴 표석에는 아니나 다를까 오류가 있다. 命名을 名命으로 새겨 놓았다. 틀린 글자 찾기는 내 악취미 가운데 하나이다. 더 이상 약수터의 역할을 하지 못하니 굳이 고치라고 민원을 넣을 일도 없겠다. 그래도 나중에 고쳐 써서 덧붙여놓으리라 마음먹는다. 아무려나 그 약수터는 여전히 물이 잘 나온다. 그 물은 고무호스를 따라 계곡으로 흘러가는데, 때로는 오가는 사람들이 물통에 물을 받아 화단에도 뿌려주고, 길냥이들에게도 준다. 지금 그 약수터의 가장 큰 역할은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발을 씻는 곳이 된 일이다. 아예 담장 위에 신발을 벗어두고 걷다가 와서 발을 씻는 사람들이 많다. 머잖아 신발장도 생길 기세다.
기슭을 한 바퀴 돈 나도 그 약수터에서 발을 씻고 발을 말리고 양말과 신발을 다시 신는다. 그런데 발이 얼마나 개운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발만 개운한 것이 아니라 온몸이 개운하여 이대로 점프를 하면 羽化而登仙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