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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Aug 02. 2024

너만 덥냐? 나도 덥다

흰샘의 한시 이야기

     

浴烏驅還至(욕오구환지) 멱감는 까마귀는 쫓아도 다시 오고

眠僮喝不懲(면동갈부징) 졸음 겨운 아이종은 야단쳐도 소용없네

人寰都是熱(인환도시열) 인간 세상 모든 곳이 절절 끓는 판이니

天宇幾時澄(천우기시징) 하늘은 어느 때나 시원하게 맑아질까  

        

사람만 덥겠는가? 짐승들도 마찬가지다. 온몸이 검은 까마귀는 땡볕에 더 취약할 것이다. 저도 살겠다고 사람 사는 마당에까지 와서 물로 몸을 식히는 까마귀가 얄밉다. 쫓아내도 다시 날아와 멱을 감는다. 까마귀도 별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부채질도 힘겨워 어린 종놈에게 시켰더니 몇 번 부치다 말고 꾸벅꾸벅 존다. “네 이놈!” 야단을 쳐 보지만 그때뿐이다. 이놈도 이해가 간다. 오죽하겠느냐...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가 더위에 허덕인다. 어서 맑고 시원한 가을 하늘을 볼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1791년 여름에 지은 시이다. 자그마치 30운(韻) 60구절이나 되는 긴 시인데 4구절만 잘라 왔다. 시 전편에서 구절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더위를 표현했는데,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더워서 환장하겠다!!” 다산은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탄 모양이다. 다산의 시에는 더위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강진 유배 중에 제자인 황상에게 보낸 시에는 “한밤중엔 번번이 미친놈처럼/ 꾀벗고 마을 샘에서 목욕을 한다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리 유배객이라지만 점잖은 양반이 한밤중에 홀딱 벗고 마을 공동 우물에서 목욕을 하는 건 제정신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매 위에만 장사가 없는 게 아니라 더위에도 장사 없다. 사람뿐이겠는가? 모든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제자리에 뿌리가 박혀 옴짝달싹 못 하는 식물들은 더 치명적이다. 발이 없어 그렇지 속으론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미치고 팔짝 뛸 것이다. 물을 주면 바짝 살아나는 화분의 화초들을 보면서 어서 이 더위가 좀 물러가기를,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리길 빌어본다. 

이경윤(李慶胤, 1545~1611)의 <고사탁족도>. 물이 엄청나게 차가운지 한쪽 발을 다른 쪽 뒤꿈치 쪽에 꼬아 붙인 모습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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