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샘의 한시 이야기
어릴 때 서울로 유학을 한 나는 고향이 너무나 그리웠고,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먼저 솟고 목이 먼저 메었다. 서울에서 산 지 50년이 넘다 보니 이제 고향이란 말은 무덤덤하거나 때로 낯선 말이 되고 말았다. 퇴임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꿈을 꾸어 보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일들에 붙들려 서울을 떠날 수 없게 되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옛 시대 중앙에서 벼슬하던 선비들도 늘 입만 열면 부르짖는 것이 “나, 돌아갈래.”였다. 도연명 이후 귀거래(歸去來)가 청렴하고 욕심 없는 선비의 당위처럼 된 면도 없지 않다. 그들은 대체로 벼슬에서 쫓겨났을 때나 정치적인 문제로 스스로 물러났을 때 향리로 돌아갔다. 위에 제시한 시의 지은이인 신숙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었다. 몇 번의 정치적 부침을 겪었으니, 이 시는 아마도 벼슬길에서 물러났을 때 지은 작품으로 보인다. 고관을 지낸 양반이 직접 밭 갈고 약초를 캤는지는 모를 일이거니와 산 좋고 물 좋은 고향에서 더 이상 세상 영욕(榮辱)에 신경쓰지 않아도 좋겠다는 말에는 진심이 묻어난다.
내가 고향에 돌아가 온전히 여생을 보낼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지만, 노모가 혼자 계신 집을 나중에 어떻게 고치고 뜰은 어떻게 가꿀지는 가끔 잠 안 오는 밤에 그려보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