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기다리며

흰샘의 한시 이야기

by 흰샘

新雪(신설)_첫눈


이언적(李彦迪,1491~1553)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新雪今朝忽滿地(신설금조홀만지) 이 아침 홀연히 온 세상에 첫눈 내려

怳然坐我水精宮(황연좌아수정궁) 수정궁에 앉았는 듯 황홀하기 그지없네

柴門誰作剡溪訪(시문수작섬계방) 사립문에 그 누가 섬계인 양 찾아줄까

獨對前山歲暮松(독대전산세모송) 앞산에 선 겨울 솔만 나홀로 바라보네


밤새 천지가 고요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첫눈이 내려 땅을 가득 덮었다. 마치 내가 온통 맑고 흰 수정으로 만들어진 궁전 안에 들어있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수정궁은 한시에서 눈에 덮인 세상을 나타낼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3구에 나온 섬계(剡溪)는 고사가 있다. 명필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천지 가득 눈 내린 새벽에 흥에 겨웠다. 그 흥을 친구인 대규(戴逵)와 함께 나누려고 거룻배를 타고 섬계를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가는 동안 흥이 다하고 말았다. 끝내 대규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다시 섬계를 타고 내려왔다. 이 시에서 시인의 사립문에는 그렇게 찾아줄 친구도 한 명 없다는 말이다. 한 해가 저무는 한겨울, 앞산의 소나무나 우두커니 마주할 뿐이다. 친구 없어도 좋다. 저 소나무 한 그루면 됐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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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이언적은 조선 중종 때의 저명한 성리학자이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쫓겨나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들어가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후에 다시 등용되어 좌찬성 겸 원상(院相)까지 지냈으나 윤원형 일당의 모함으로 평안도 강계(江界)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된 경주 양동마을이 그가 살던 곳이다.


<번역, 해설: 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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