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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Nov 29. 2022

옥상농부의 하루-겨울은 혹독할 것이나...

<천자문>에 秋收冬藏(추수동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저장한다는 말이다. 농경사회에서 자연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일을 이른 말이다. 그러나 의미를 확장하면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자연 자체가 가을이면 거두고 겨울에는 감물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나무 한 그루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무성하던 잎들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이 가을이다. 그리고 겨울 동안은 활동과 성장을 멈추고 생명을 저장할 뿐이다. 藏은 널빤지(爿)로 막고 풀(艹)을 덮어 놓은 모습이다. 藏은 ‘감물하다’로 풀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우리말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다.  

내가 돌보는 옥상 식물들도 이제 겨울을 맞이했다. 겨울비가 내린 다음에는 갑자기 혹한으로 바뀐다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빗물을 잔뜩 머금은 채 혹한이 닥치면 뿌리째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넓고 깊은 땅에 뿌리박고 있는 것들은 걱정할 것이 없으나 나의 식물들은 모두 화분에 담긴 것들이다. 하여,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큰비가 내리기 전에 서둘러 덮개로 모두 덮어 두었다. 

채소부-가을에 파종한 상추와 시금치가 자란다
화초부-블루베리, 미스김라일락, 매발톱, 패랭이, 나리꽃, 은방울꽃, 금낭화 등 20여 가지 화초가 자란다

빗물을 받아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 놓아둔 물통도 깨끗이 비워 두었다. 작년에 그냥 두었다가 안에 든 물이 얼어서 물통 바닥이 갈라졌던 기억이 있다. 버리기 아까워 자전거 타이어 조각으로 때웠더니 멀쩡했다. 

물통도 모두 비우고 뚜껑을 덮어야 얼어 터지지 않는다


겨울은 혹독할 것이나 저 작고 여린 것들은 잘 이겨낼 것이다. 봄이 되면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을 믿는다. 혹여 모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것은 드넓은 대지에 살게 하지 못하고 작은 화분에 가둔 나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부디 그런 비극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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