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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17. 2022

본조르노,시칠리아-20. 개와 고양이의 천국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든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 같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도 모든 집에 개나 고양이가 있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네 사람들 중 절반은 개를 데리고 다닌다. 작고 앙증맞은 개는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중형견이나 대형견이다. 대체로 목줄은 했지만 입마개를 한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건 개 주인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정말 많은 사망자를 낸 곳이 이탈리아인데 마스크 쓴 사람은 여행객뿐이다. 실내에서나 실외에서나 그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모녀

그런데 이 개들이 교육을 잘 받은 티가 난다. 사람들을 보고 함부로 짖거나 다른 개를 만나 으르렁거리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을 잘 받으면 뭐하나? 결정적으로 똥오줌을 못 가리는데... 그놈들은 길가 아무 데나 똥오줌을 누고, 주인은 사랑스런 눈빛으로 놈들이 일을 다 볼 때까지 바라보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유유히 자리를 뜬다. 거리마다 개들의 배설물이 군데군데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는 변을 처리할 수 있는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처리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여긴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 개들만 교육하고 주인은 교육을 안 한 것이 분명하다. 

동물들의 배설물로 얼룩진 라구사의 골목길

고양이들도 가는 곳마다 만날 수 있었다. 간혹 사람을 경계하거나 부끄럼을 많이 타는 놈들도 있지만 대개는 사람을 잘 따른다. 먼저 다가와 구애를 하는 놈들도 있고 조금만 아는 체를 해도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비려는 녀석들이 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고양이 간식이라도 좀 챙겨올 걸.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집사의 입장에서는 퍽 미안하고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곳곳에 고양이 급식소가 있는데, 라구사에 갔을 때는 긴 그릇을 칸칸이 나누어 열 명(?) 이상이 한 번에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든 큰 급식소도 있었다. 우리는 그 급식소의 이름을 ‘고양이식당’으로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점심시간 후라서 그런지 식당은 한산했다. 겨우 두 명의 손님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공원을 산책하는 고양이들

예전에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愛玩動物)’이라 했다. ‘애완’의 문자적 의미는 ‘사랑하고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살아있는 장난감 정도로 여긴 것이다. 최근에는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伴侶動物)’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반려’란 ‘짝이 되어 함께 간다’는 뜻이다. 부부를 반려자라고 하듯이 이제 개나 고양이도 그에 못지않은 가족으로 대접할 만큼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우리 집 흰 고양이 ‘라떼’ 생각을 했더랬다. 한번은 라떼가 꿈에도 나타났으며, 한밤중에 자다가 라떼의 울음소리를 환청으로 들은 적도 있었다. 모두가 라떼의 소식을 궁금해 하자 서울에 혼자 남은 아들이 근황을 전해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종일 자다가 밤에는 활동이 왕성해져 두 시간 단위로 잠을 깨워 못 살겠다고...

꽃향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 고양이, 라떼

갈수록 인간의 수명은 길어지는데 그에 비례하여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이 개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는 이유일 것이다. 집에는 당연히 고양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외출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려나 이탈리아는 개와 고양이의 천국 같았다. 우리나라에는 ‘애완’이 아니라 ‘반려’라 하고, 심지어 ‘가족’이라 하면서 늙고 병들면 내다 버리는 비정한 인간들이 많다. 거리에서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에도 동물등록제가 정착되어 동물들이 제대로 관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저나 이탈리아人들아. 제발 거리의 개똥 좀 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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