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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r 08. 2023

여행처럼...

올해 전주에서 한문 강의를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오전 강의인지라 용산역에서 7시 9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야만 합니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언제였는지 아득합니다. 그 아득한 세월을 건너 오늘, 신새벽 여명을 만났습니다.

예전에 고3 담임을 할 때는 7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기에 늘 새벽에 일어나야 했지요.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참으로 고역이었습니다. 0교시부터 시작해서 7교시, 이후에 보충수업 2시간을 하면 꼭 10시간을 아이들과 교사들이 학교에 잡혀 있어야 했지요. 거기서 끝나면 좋게요?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야자'에 돌입합니다. 11시까지 야자 감독을 하고 집에 가면 12시. 다시 5시 반이면 일어나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세월을 어찌 견뎠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을 때라 가능했겠지요.


꼭 이렇게 얘기가 샙니다. 아무려나 오늘 나는 고3 담임  때처럼 신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들이 늘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부산대는 소리에 고양이가 함께 일어나 쫓아다닙니다.

미리 계산해 놓은 대로 집을 나서기 전에 할 일들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진행합니다. 먼저 커피포트 전원을 켜고, 어제 끓여놓은 누룽지도 데웁니다. 냉동실에서 모닝빵 하나를 꺼내 놓는 일도 잊으면 안 됩니다. 얼른 머리를 감고 나면 그 사이에 물이 끓고 누룽지도 데워지지요. 머리를 말리는 동안 빵도 해동이 됩니다. 그러면 빵은 반 갈라 오븐에 넣고 어제 미리 갈아놓은 커피가루를 드리퍼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커피를 내립니다. 그 동안에 사과 하나 씻고 삶은 계란도 하나 까면 빵도 다 구워지고 커피도 알맞게 만들어지지요. 자, 이제 식사 시간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을 거르지 않는 것이 평생의 습관으로 되어 있어서 바쁜 와중에도 이런 일들은 그리 귀찮지 않습니다.

누룽지 반 공기, 빵 한 쪽에 사과 반 쪽, 계란 하나, 커피 한 잔. 이 정도면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지요. 커피는 아내와 딸 몫을 남겨두고 작은 텀블러에도 담습니다. 그건 아마 점심 이후의 식곤증을 풀어줄 묘약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복잡한(!)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와 옷을 입는 데까지 50분이 걸렸군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는 것도 고3 담임 이후 처음입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인데도 지하철역은 붐빕니다. 이렇게나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이웃들이 많았구나... 새삼 나의 게으름을 돌아봅니다.

지하철로 10분만 가면 신용산역이고, 거기서 5분만 걸으면 기차역입니다. KTX를 타는 것도 몇 년만인지 모릅니다. 일찍 서두른 덕분에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라 서두를 수밖에 없었거든요. 다음 주부터는 10분쯤 늦게 나와도 되겠다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타는 KTX는 좋습니다.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주 수요일이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차창밖으로 변해가는 들판과 강산의 모습을 1주일마다 구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이제 오늘 강의할 원고를 한 번 더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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