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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Apr 06. 2023

花樣年華

목련이 진다

동백처럼 처연하지도 않게

벚꽃처럼 애잔하지도 않게     


가장 순결한 (척하던) 시절이 있었다

차디찬 바닥에 제 목을 베어 떨구는

동백보다 비장하게

아득한 허공에 제 몸을 떼어 날리는

벚꽃보다 허허롭게

버릴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화려한 세월은 이미 갔는데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끝내 끝끝내 노추한 욕망을 붙들고     


목련이 진다

추하게

목련이 진다.            


   

누구나 빛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슨 개소리. 내 인생은 오로지 암흑뿐이었어.”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한 번쯤은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장 비장하고 처연했던 순간이 절정의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천지에 만발했던 온갖 꽃들이 비바람에 하릴없이 우수수... 가을 낙엽처럼 떨어집니다. 자연의 이치인 것을 사람만 아쉽다고 한숨을 쉽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읊었던 시인조차도 마침내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 가장 추하게 집니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것도 추하다는 것도 다 사람의 말[言語]에 갇힌 개념일 뿐, 꽃에게는 애당초 그런 것이 없습니다. 봄이 오면 피고 봄이 가면 지는 것이 정직하고 진실한 꽃의 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추한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그만 쓸쓸해져서 떨어진 꽃잎이나 주워 봅니다. 화려했던 세월이나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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