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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Apr 26. 2023

흰샘의 옥상텃밭 이야기-호접몽을 꾸다

호접몽을 꾸었다.

장자(莊子)처럼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은 아니지만 나비 꿈을 꾼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나비가 나의 방 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었으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곰곰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는 온갖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대개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것들이라 그냥 지나치고 만다. 그런데 유난히 특이한 꿈을 꿀 때가 있다. 심지어 꿈에서 신을 만나거나 존경하는 인물이 우리 집에 찾아오기도 한다. 돼지나 뱀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 날은 복권을 사야지, 마음먹는다. 하지만 평소에 복권 같은 걸 잘 사지 않으니 생각만 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어쩌다 복권을 사더라도 의미 있는 등수로 당첨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한번은 장난 삼아 이런 걸 쓴 적도 있다.     


간밤 꿈이 아까워 복권을 샀네

아니나 다를까 꽝이 나왔네

꿈도 그걸로 꽝이 되었네

그냥 꿈만 간직했더라면 

평생 복권당첨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을     


아무려나 어젯밤에 꾼 나비 꿈은 복권을 사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 복권 꿈은 아닐 터. 그렇다면 무슨 꿈이란 말인가? 곰곰 생각하다가 답을 얻었다. 아하, 그거였구나.     

옥상에 화초와 몇몇 농작물(?)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무척 오래되었다. 고추나 오이, 토마토 같은 작물들은 어쩔 수 없이 모종을 사다가 심지만, 상추나 시금치, 쑥갓 등의 채소는 대개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날마다 싹이 텄나를 살펴보는 일은 저절로 아침을 깨우는 일이 된다. 며칠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으면 조바심을 하다가 드디어 첫 싹이 올라오면 안심을 한다. 한 놈만 올라오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 올라오니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열무싹이 일제히 올라왔다

올해는 기어이 열무를 성공하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전주 남부시장 종묘상에서 제일 좋은 열무 씨앗을 한 봉지 샀다. 열무는 심으면 아주 잘 나고 잘 자란다. 그런데 한 번도 수확에 성공한 적이 없다. 내가 먹기 전에 벌레가 다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농약을 뿌릴 수도 없는 노릇으로, 번번이 벌레들 좋은 일만 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지리산 자락에 사는 시인 박남준 형이 가르쳐준 방법은 그물을 씌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열무 싹이 나오자마자 그물을 씌웠다. 대나무로 둥근 아치를 만들어 화분 양쪽에 박고 햇볕과 빗물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고 나비는 들어갈 수 없는 정도의 그물을 치니 안성맞춤이다. 몇 날 며칠 열무 생각을 하다 보니 나비 생각을 한 것이고, 나비의 ‘침략’을 막기 위해 그물을 씌우고 보니 나비가 그걸 알고 섭섭하다고 내 꿈에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또 나비들이 알을 까고 그것들이 자라서 나비가 될 수 있게 그물 없는 빈 화분 하나에 열무씨를 다시 뿌려야 할까 보다 생각한다. 열무에게는 또 미안한 노릇이지만, 열무야 자라면 내가 먹든 벌레가 먹든 먹는 것이니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라고 달래볼 심산이다. 

벌레의 침략을 대비하여 그물을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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