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的인 아이러니

by 흰샘

꽃구경



눈곱만이나 해서

무릎 꿇지 않고는 온전히 볼 수 없는

좀꽃마리

개미자리

냉이꽃

내가 그들을 보기 전에

그들이 나를 먼저 보았을 것이다


서로의 生에 꼭 한 번뿐인 이 봄날

때마침 쏟아진 햇살에 흐려진 눈을 비비며

오랫동안 굳어진 무릎을 꺾어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본다.


냉이꽃-2.JPG 냉이꽃

젊은 시절 한때, 야생화에 미쳐서 당시에는 드물었던 일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전국의 산야를 헤매던 때가 있었습니다. 색깔과 모습이 화려한 꽃들이며, 특별한 곳에서만 피는 희귀한 꽃들도 많이 만났지만, 가장 눈이 가는 것들은 들판 어디에나 지천으로 피어나는 작은 꽃들이었습니다.

좀꽃마리-2.JPG 좀꽃마리

그것들을 자세히 보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눈이 좋아야 하고,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것들은 거의 땅에 붙어서 피는 데다가 크기도 너무나 작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최대한 숙여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작고 초라한(인간들이 그렇게 붙인 수식어일 뿐이지만) 것들이 가장 겸손한 자세를 요구한다는 것은 詩的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 장미나 백합에게서 얻지 못한 시들을 그들에게서 얻었습니다.

자운영-6.JPG 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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