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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Jun 11. 2023

나의 학점은 "A+"다

처음 맡게 된 인문학 강의는 시작부터 참 어려웠다. 기존의 전공수업과 달리 인문대학 전체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인지라 수업계획을 짜는 것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나치게 욕심을 많이 부린 탓인지 최초 수강신청자 34명은 결국 12명까지 줄어들었다. 금요일 1교시부터 3시간 연속 강의에, 매시간 발표와 토론과 과제가 주어졌으니 학생들이 질릴 만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은’ 학생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세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신영복의 <강의>, 전호근의 <맹자>, 그리고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었다. <맹자>는 분량이 많지 않지만, 나머지 두 권은 400쪽~500쪽에 달하는 거작이었다. 그 책들을 한 학기 동안 꼼꼼히 읽고 분석하고 발표하고 토론했다. 학생들의 과제와 토론에 일일이 피드백을 해 주었다. 그것이 어려운 강의를 듣겠다고 신청한 학생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것으로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그러니 이 수업은 학생들에게는 물론 내게도 참 힘든 수업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또 이렇게 해 보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학생들과 나는 그 일을 무사히 해내고 종강을 맞이했다. 

종강 날은 간단히 기말시험을 치르고 역시 간단히 ‘종강 파티’를 한다고 공지를 해 두었던 터이다. 처음에는 학교 근처 피자집 등을 물색해서 피자를 시켜 먹을까 했는데,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일찍 문을 여는 피자 가게가 전무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주 수제 초코파이를 사다가 나눠 먹는 것이었다. 매주 전주에 강의를 하러 가는데, 한옥마을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풍년제과 본점이 있다. 거기서 커다란 수제 초코파이를 두 박스 샀다. 그리고 조교에게 부탁하여 학교 아래 카페에서 냉커피를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기말시험은 오픈북인 데다 문제도 몇 개 되지 않아 금세 끝났다. 시험 마지막 문제는 한 학기 동안 이 과목을 수강하면서 무엇이든 느낀 점을 쓰라는 것이었다. 나의 피드백을 기다렸다는 대답도 몇 개가 나왔고, 매시간 하나씩 소개해 준 漢詩가 좋았다는 학생도 있었다. 무엇보다 학기 중에 그런 책들을 읽을 여유도 기회도 없었는데, 좋은 책을 읽고 학우들과 토론하면서 깨달은 바가 많다고 하여 더욱 다행이었다. 

학생들이 답을 다 쓴 것 같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점수> 난에 자신의 학점을 스스로 매겨 보라 했다. 학생들이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하다가 이윽고 멋쩍게 웃으며 학점을 적어 냈다. 학점은 다양했다. 특이한 점은 여학생들은 모두 A+를 적어 냈고, 남학생들은 A+부터  C+까지 다양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 과목은 절대평가인 데다 매우 ‘빡세게’ 끌고간 과목이어서 끝까지 남은 학생들에게는 모두 A+를 주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결석을 했거나 과제를 한 두 개 빠뜨린 경우까지 모두 같은 점수를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이었다. 약간의 차별은 두었지만, 모두 자신이 적어 낸 점수보다 나쁘지 않게 주었으니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나도 나에게 A+를 주었다.

수제 초코파이와 냉커피를 하나씩 받아든 학생들이 정말 어린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한 학기 동안 함께 발표 준비하고 토론했던 조원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한 학기를 정리하고 평가해 보라 하고는 강의실을 나왔다. 6월 햇살이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머릿속이며 가슴속을 뚫고 지나가는 듯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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