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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Jun 30. 2023

흰샘의 漢詩 이야기

두보(杜甫)의 강촌(江村)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물 한 굽이가 마을 안고 흐르는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긴 여름날 강촌은 모든 일이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제멋대로 오가는 건 들보 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친하고도 가까울손 물속의 갈매기로다.

老妻畫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낸 종이 위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못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병 많은 인생이라 약물이나 있음 되지*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미천한 몸 이밖에 더 무엇을 구할쏜가?

* 이 구절은 “但有故人供禄米[단유고인공녹미] 벗이 주는 녹봉미나 있으면 그만이지”로 된 판본도 있다.

[번역: 희샘]

나의 고향 마을 전경

두보(712~770)는 자(字)가 자미(子美)이며, 호는 소릉(少陵) · 공부(工部) · 노두(老杜) · 초당(草堂) 등이다. 동시대의 위대한 시인인 이백(李白)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병칭되는데, 이백을 흔히 ‘시선(詩仙)’으로 부르는 데 비해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두보는 뛰어난 시재(詩才)를 지녔지만 과거에 낙방하여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안사의 난을 만나 가족들이 흩어지고, 그 와중에 어린 아들이 아사(餓死)하는 비극까지 겪는다. 우여곡절 끝에 벗들의 도움으로 성도(成都)의 초당에서 살던 때가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에서 그나마 가장 평안한 시절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시절에 창작된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카메라의 렌즈는 멀리 강가 마을 전체를 조감한다. (맑은 강물 한 굽이가 마을 안고 흐르는 모습에서는 늘 정지용 <향수>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카메라는 렌즈를 조금 당겨 강변의 작은 초당과 강물을 비춘다. 제비들은 제멋대로 드나들고 갈매기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다. 이윽고 한가롭기 그지없는 시인의 집 마당. 시인의 아내는 남편을 위해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들은 작은 못을 두들겨 낚싯바늘을 만든다. 마지막 장면은 늙은 시인의 짓무른 눈동자와 주름진 미소로, 그의 나지막한 독백으로 맺는다. 

시 내용만으로 이미 충분하여 사실 이런 분석 같은 것이 오히려 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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