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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Jul 24. 2023

나는 어떤 책을 골랐을까요?

번역서 고르는 방법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Walden>을 2010년에 읽었으니 벌써 13년이 지나갔다. 그때의 감동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을 실천하는 그의 삶이 오래도록 꿈꾸어 온 동경憧憬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도 퇴임을 하면 저렇게 살아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터였다. 그러나 퇴임 이후 오히려 더 바쁜 일들이 생기게 되면서 동경은 그저 동경으로만 남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너무나 깨끗하게 읽은 ‘헌책’이 아까워 중고서점에 가서 되팔고, 무슨 책을 살까 하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월든>이었다. 검색대에 가서 찾아보니 두 권이 검색되었다. 출판사와 번역자가 다르다. 나는 두 권의 책을 모두 빼 들었다. 한 권은 표지가 익숙하다. 바로 내가 전에 읽었던 그 책이다. 또 한 권은 표지가 낯설다. 공교롭게도 두 책은 가격도 같았으므로 나의 결정에 가격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이전에 읽었다는 익숙함은 배제하기로 한다. 나는 첫 장을 읽고 결정하기로 했다. 둘 다 번역서이기 때문이다. 

번역이 잘 된 책을 고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다음은 내가 이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쓴 독후감의 일부이다. 


참으로 짜증 나는 일은 번역의 문제였다. ‘다르다’를 ‘틀리다’로 번역하고, ‘하든지’와 ‘하던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기본적인 문법이나 어법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떤 문장은 앞뒤의 호응이 전혀 맞지 않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십 번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파악할 수 없는 번역이 많았다. 번역을 한 사람도 역시 생물학을 전공한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이며, 이 책 말고도 번역서가 여러 권 있다. 그런데, 나는 이분에게 우선 번역보다는 우리말 공부를 차근차근 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나를 참으로 짜증 나게 한 번역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 증거로서 주목되고 있는 것은 순위가 정해져 있어 심한 싸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닭의 집단에서는 끊임없이 구성원이 바뀌므로 그 결과 항상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집단보다 산란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나 같으면 이렇게 고치고 싶다.     


“그 이론에 대한 좋은 증거가 있다. 순위가 정해져 있어 심한 싸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닭의 집단은, 끊임없이 구성원이 바뀌는 탓에 항상 싸움이 일어나는 닭의 집단보다 산란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아예 무슨 뜻인지 파악이 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떻게 고칠 재간도 없다.     


“그의 이름은 1970년에 출간된 <동물 행동학에 관하여> 2종은 중요한 교과서의 색인에조차 없다.”     


이런 엉터리없는 번역은 너무도 훌륭한 책의 격을 떨어뜨린다. 다 읽을 필요도 없다. 몇 구절만 읽어보아도 이 번역이 영어식 번역인지 한국어식 번역인지는 금세 판명이 난다. 

다시 <월든>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나는 두 책의 제1장을 읽어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A

도회지 사람들이 내 생활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독자들에게 내 일을 구구하게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일을 주제넘은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결코 주제넘은 짓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고려할 때 아주 자연스럽고 적절했던 것 같다.     


B

내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우리 읍내 사람들이 캐묻지 않았던들 나는 내 사사로운 일을 독자 여러분에게 드러내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숲에서 보낸 생활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살펴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적절한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A와 B는 책표지의 순서와는 상관없다. 과연 나는 A를 골랐을까, B를 골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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