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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Jul 28. 2023

흰샘의 옥상텃밭 이야기

월척을 잡다

월척이다!!

제목만 보고 낚시를 생각하셨다면 그야말로 낚시에 낚인 셈이다. 사실 나는 한때 낚시광이라 할 정도로 낚시를 좋아했지만, 낚싯대를 잡아본 것이 몇 년은 지났다. 오늘의 월척의 주인공은 물고기가 아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월척(越尺)이란 ‘넘을, 월’에 ‘자, 척’이다. 그러니까 길이가 한 자가 넘는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 자를 30cm로 보아 그 이상의 크기를 월척이라고 한다. 보통은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이 맞는다.

하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오늘의 월척은 물고기가 아니다. 그럼 뭐? 바로 오이 이야기다. 옥상에 화분들을 모아놓고 화초와 채소를 가꾼 지는 10년도 넘었다. 여러 가지를 심어 보았다. 고추나 상추는 물론이고, 토마토, 가지, 단호박, 강낭콩, 땅콩, 열무, 배추, 들깨(깻잎), 쑥갓, 겨자채, 시금치... 그러다가 작년부터 작물 수를 줄이기로 했다. 상추와 시금치는 매일 아침 샐러용으로 필요하니 없앨 수 없고, 고추 또한 요리에서 빠질 수 없다. 거기에 바질을 추가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추 화분을 줄이고 거기에 오이를 심기 시작했다. 

오래되어 쓸 수 없는 빨래 건조대를 세워놓고 사방에 커다란 화분 하나씩을 고정하여 오이 모종을 심었다. 작년에 20여 개의 오이를 수확해서 맛나게 먹었다. 올해도 비슷했다. 그런데 오이가 계속해서 열리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화분이라 대지에서 공급되는 양분이나 수분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한 그루에서 오이 대여섯 개를 수확하고 나면 잘 열리지 않거나 너무 작고 비틀어졌다. 그래서 올해는 제1세대 오이를 20여 개 수확한 다음 바로 뽑아버리고 2세대 오이를 새로 심었다. 2세대는 특별히 ‘가시오이’라고 하는 품종이었다. 오이가 열리자 정말로 선인장 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 박혀 있었다. 그 가시오이가 폭풍 성장을 해서 오늘 수확한 놈들 중에 30cm가 넘은 월척을 잡은 것이다. 나머지 둘도 월척은 아니지만 준척(準尺)은 되었다. 옹골지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적합하다. 이놈들로 뭘 할까 하다가 역시 옥상에서 수확한 부추를 썰어 소를 만들어 오이소박이를 만들었다. 

아직 오이 나무(?)는 젊고 싱싱하니 적어도 한 그루에서 5개 이상은 더 열리리라 기대하고 있다. 하나쯤은 늙을 때까지 놓아두어 노각을 만들고, 씨앗을 받아서 내년에는 씨앗으로 오이를 키워볼까 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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