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상믿 Sep 18. 2024

아빠를 부탁해


어제 추석 명절로 친정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자식들과 술한잔 하시면서 기분이 좋아진 아빠를 보니 이런게 사람사는 풍경이지 싶다.


불과 몇달 전 아빠는 거의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힘도 없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내셨다. 그런 아빠를 힘들어하는 엄마를 볼 수 없어 정말 아빠를 요양병원에 보내야 하나 라는 고민까지 했었는데 이런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실로 감사한 마음 뿐이다.


친정 아빠가 주간보호 센터를 등록하고 다니신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첫 달을 무사히 다니시고 결재를 형제비에서 하고 난 지금의 아빠를 보면 아빠 노치원 보내기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무엇이든 걱정보다는 일단 하고 볼 일이다.

아빠를 주간보호 센터에 보내기 전 엄마와 우리 형제들은 걱정이 많았다.


어떤 것이 아빠를 위한 건지 고민도 하고 과연 아빠가 잘 다녀줄지를 의논하며 긍정보다는 부정의 결과만을 얘기했었다. 그런데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


매일 아침 아빠와 전화 통화를 한다.

"아빠 다 준비하고 벌써 나가 계시는 거야? 차 올시간 아직 조금 남았는데.."

"딸, 아빠 애기 아니여. 아빠가 얼마나 정확한 사람인디"


맞다. 우리 아빠는 어디를 다니시면서 한 번도 늦거나 어떤 일로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책임감이 정말 강하신 분이다. 매일 작은 일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다니시다가 나이가 들고 여러이유로 노인 일자리를 잘린 후 집에 계시면서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더 드셨고 낮에 술을 드시니 안자던 낮잠을 주무시게 되고 그러면서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거기다 작년 겨울 집앞에서 당한 교통사고에 치매 초기 증상까지. 아직은 우리들 표현으로 이쁜 치매가 오셨지만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로 힘든 시기였다.


그런 아빠가 주간보호 센터를 한 달 다니시고 하시는 말로 우리 딸들은 빵 터지고 말았다.

"아빠 다니시는데는 괜찮아요?"

"그럼 이런 것이 힘들다고 하면 뭔 일을 한다냐"

"다니시는 거 안 힘들어요?"

"그냥 맨날 하는 일인데 뭐시 힘들어"

"친구분들들은 어떠셔? 친구 좀 사귀셨어?"

"뭐. 다 늙은 늙은이들만 있는디 뭔 친구가 생기겄냐. 친구는 그런 게 친구가 아니여"

"아빠. 그래도 잘하고 계셔서 멋져"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근데 여기는 한 달을 다녔는데 돈이 언제 나온다냐? 나올 때가 됐는디"

"한 달을 만근했는디 아직 암것도 안 나왔어. 엄마 통장으로 들어갔나?"


헉!! 아빠의 이 말에 우리 딸들은 어이없어 빵 터져 웃고 말았다. 이렇게라도 생각하고 잘 다녀주시는 아빠가 고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번도 놀러 다닌 적이 없던 아빠가 주간보호 센터를 일로 생각하시는 게 마음이 걸렸다.


결국 큰언니가 봉투에 돈을 넣어 아빠 월급이 나한테 들어왔다며 한 달에 한 번 이제 내 통장으로 들어오기로 했다면서 드렸더니 금방 표정이 밝아져 돈을 꺼내 세어본다.  그런데.. 또 미심쩍은 표정으로 돈을 보며 우리를 쳐다본다.


"왜 아빠, 돈이 너무 작아? 아빠 힘든 일 안 하고 그림 그리고 노래 가르쳐 주고점심 주고 그런 거 빼고 계산해서 주는 거야"라고 했다. 

"아니.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한 달 일했으니까 얼마나 오는지는 알아야 제" 하는 것이다.


우리 형제들의 걱정과 달리 아빠는 지금 노치원 생활에 잘 적응 중이시다.

드시던 술을 못 드시게 해서 문제가 될까 걱정했는데 그것도 스스로 잘 조절하시고 다니시기 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진 아빠를 보면서 그나마 이런 모든 과정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치매 초기로 예전과 달라진 아빠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84년을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아빠가 갑자기 변할 리 없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거기에 그냥 노인이면 올 수 있는 치매가 왔다 생각하면 자식 된 도리로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상황에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아빠가 우리들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적응하고 다니셔서 감사하고 치매 증상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자식들 다 알아보고 이쁜 치매를 앓고 계셔서 감사하다. 작년 겨울에 비해 이렇게 까지 좋아진 모습을 보니 이런 일상들이 그저 서서히 진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계시는 중이다. 거기에 우리는 자식으로서 조금의 도움을 드릴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아빠가 노래를 이렇게 잘 하셨나 싶다.

가족들이 다 모이고 아빠의 기분을 맞춰줘서 그런지 아빠는 오늘 최고의 기분이시다. 이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무엇이 되었든 아빠는 지금 잘 살고 계시는 중이다.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아빠가 치매가 오셨다고 하겠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고 상상하고 믿으면 일어나는 일 (오로다 데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