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추석 명절로 친정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자식들과 술한잔 하시면서 기분이 좋아진 아빠를 보니 이런게 사람사는 풍경이지 싶다.
불과 몇달 전 아빠는 거의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힘도 없고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내셨다. 그런 아빠를 힘들어하는 엄마를 볼 수 없어 정말 아빠를 요양병원에 보내야 하나 라는 고민까지 했었는데 이런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실로 감사한 마음 뿐이다.
친정 아빠가 주간보호 센터를 등록하고 다니신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첫 달을 무사히 다니시고 결재를 형제비에서 하고 난 지금의 아빠를 보면 아빠 노치원 보내기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무엇이든 걱정보다는 일단 하고 볼 일이다.
아빠를 주간보호 센터에 보내기 전 엄마와 우리 형제들은 걱정이 많았다.
어떤 것이 아빠를 위한 건지 고민도 하고 과연 아빠가 잘 다녀줄지를 의논하며 긍정보다는 부정의 결과만을 얘기했었다. 그런데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
매일 아침 아빠와 전화 통화를 한다.
"아빠 다 준비하고 벌써 나가 계시는 거야? 차 올시간 아직 조금 남았는데.."
"딸, 아빠 애기 아니여. 아빠가 얼마나 정확한 사람인디"
맞다. 우리 아빠는 어디를 다니시면서 한 번도 늦거나 어떤 일로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책임감이 정말 강하신 분이다. 매일 작은 일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다니시다가 나이가 들고 여러이유로 노인 일자리를 잘린 후 집에 계시면서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더 드셨고 낮에 술을 드시니 안자던 낮잠을 주무시게 되고 그러면서 밤에 잠을 못 주무시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거기다 작년 겨울 집앞에서 당한 교통사고에 치매 초기 증상까지. 아직은 우리들 표현으로 이쁜 치매가 오셨지만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로 힘든 시기였다.
그런 아빠가 주간보호 센터를 한 달 다니시고 하시는 말로 우리 딸들은 빵 터지고 말았다.
"아빠 다니시는데는 괜찮아요?"
"그럼 이런 것이 힘들다고 하면 뭔 일을 한다냐"
"다니시는 거 안 힘들어요?"
"그냥 맨날 하는 일인데 뭐시 힘들어"
"친구분들들은 어떠셔? 친구 좀 사귀셨어?"
"뭐. 다 늙은 늙은이들만 있는디 뭔 친구가 생기겄냐. 친구는 그런 게 친구가 아니여"
"아빠. 그래도 잘하고 계셔서 멋져"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근데 여기는 한 달을 다녔는데 돈이 언제 나온다냐? 나올 때가 됐는디"
"한 달을 만근했는디 아직 암것도 안 나왔어. 엄마 통장으로 들어갔나?"
헉!! 아빠의 이 말에 우리 딸들은 어이없어 빵 터져 웃고 말았다. 이렇게라도 생각하고 잘 다녀주시는 아빠가 고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번도 놀러 다닌 적이 없던 아빠가 주간보호 센터를 일로 생각하시는 게 마음이 걸렸다.
결국 큰언니가 봉투에 돈을 넣어 아빠 월급이 나한테 들어왔다며 한 달에 한 번 이제 내 통장으로 들어오기로 했다면서 드렸더니 금방 표정이 밝아져 돈을 꺼내 세어본다. 그런데.. 또 미심쩍은 표정으로 돈을 보며 우리를 쳐다본다.
"왜 아빠, 돈이 너무 작아? 아빠 힘든 일 안 하고 그림 그리고 노래 가르쳐 주고점심 주고 그런 거 빼고 계산해서 주는 거야"라고 했다.
"아니.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한 달 일했으니까 얼마나 오는지는 알아야 제" 하는 것이다.
우리 형제들의 걱정과 달리 아빠는 지금 노치원 생활에 잘 적응 중이시다.
드시던 술을 못 드시게 해서 문제가 될까 걱정했는데 그것도 스스로 잘 조절하시고 다니시기 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진 아빠를 보면서 그나마 이런 모든 과정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치매 초기로 예전과 달라진 아빠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84년을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아빠가 갑자기 변할 리 없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거기에 그냥 노인이면 올 수 있는 치매가 왔다 생각하면 자식 된 도리로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지금 상황에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아빠가 우리들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적응하고 다니셔서 감사하고 치매 증상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자식들 다 알아보고 이쁜 치매를 앓고 계셔서 감사하다. 작년 겨울에 비해 이렇게 까지 좋아진 모습을 보니 이런 일상들이 그저 서서히 진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계시는 중이다. 거기에 우리는 자식으로서 조금의 도움을 드릴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 아빠가 노래를 이렇게 잘 하셨나 싶다.
가족들이 다 모이고 아빠의 기분을 맞춰줘서 그런지 아빠는 오늘 최고의 기분이시다. 이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무엇이 되었든 아빠는 지금 잘 살고 계시는 중이다.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아빠가 치매가 오셨다고 하겠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