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해 앞산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회색빛 하늘. 바람도 차고 옷깃에 스며드는 찬 기운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어디선가 들리는 우렁찬 함성에 귀가 쫑긋하다.
아침 재활용을 버리고 들어오는데 아파트 바로 옆 중학교에서 평소에 들어 보지 못한 소리와 활기가 느껴진다. 연실 음악소리는 자동으로 돌아가는 듯 계속되고 스피커에서도 많은 참여를 부탁하는 안내 방송 소리가 계속된다.
언제 이런 소리를 들어보았던가?
활기차고 거침없는, 열정 가득한 고함소리
원래 고막을 때리는 소음은 귀가 따가워야 하는데 활기에 찬 고함소리가 귀에 따갑기는커녕 가슴이 뛴다.
집에 들어와 창문을 열고 학교 운동장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우렁찬 함성과 줄지어 서있는 학생들 사이로 나도 모르게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곳에 이사 온 2년 전 운동장을 생각하면 이런 함성과 활기는 너무 반갑다. 회색빛 도시에 코로나로 학교 문은 꽁꽁 닫히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기도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나갈 힘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시골 깡촌에서 태어난 나는 운동을 참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였다. 운동회의 꽃인 계주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뛸 정도로 나는 달리기를 잘했다.
운동회날이면 항상 공책이며 필기도구를 다른 아이들보다 상으로 많이 받았으니 어쩌면 운동회는 나에게 축제의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마라톤을 뛴다.
나이 먹고 그 힘든 걸 왜 하느냐는 지인들의 말에도 마라톤을 뛰는 이유는 달리고 난 뒤의 느낌과 기분이 좋아서일 것이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긴장감과 호흡,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과 붉게 열이 나는 얼굴의 화끈거림. 그 순간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모든 느낌이 좋다.
그래서인지 오늘 운동장에서 들리는 저 함성과 고함이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저 함성과 함께 하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날이 썰렁해 열지 않았던 창문을 열고 함성을 듣는다. 그때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하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마음이랄까.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윤도현의 <나는 나비> 노래가 울러 퍼진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게 된다.
지금은 MBTI 검사를 해보면 외향형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나 역시 외향형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외향적인 성격보다 내향적인 성격이 많았던 아이였던 것 같다.
수줍음과 무모함이 함께 있었고, 두려움과 용기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이중적인 성향인 아이.
발표는 싫지만 주도적인 것을 즐겼고, 말이 적고 조용했지만 활동에는 적극적이었던 아이.
오늘 중학교 아이들의 함성에 나도 모르게 14살의 나를 만난다. 너무 오래돼 기억조차 없는 나의 사춘기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만날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아마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을까 싶다.
스피커 마이크 소리는 계속되고 호루라기 소리에 일사불란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긴 줄로 줄을 서서 힘을 겨룰 타이밍을 보고 있다.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영차. 하나 둘 셋 넷 다섯. 삐~~'
줄다리기 시간이 저리 짧았나?
힘주며 이기려고 온 힘을 다해 당겼던 내가 저기 함께 하고 있다.
저 아이들은 저 순간의 소중함도 좋은 시절이라는 것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겠지. 내가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 저 푸릇하고 활기찬 나이가 좋은 나이였음을 알듯이.
오늘 저 함성과 열정과 함께한 14살의 청춘들과 14살의 나를 기억하며 글을 쓴다. 추억을 회상하는 일도 14살의 나를 만나는 시간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준다.
운동회의 꽃 계주는 글을 다 쓰고 온전히 함께 해보련다. 그 시절 내가 주인공으로 뛰고 있는 그때를 회상하며.
자욱했던 안개도 거치고 흐린 하늘도 조금씩 밝아지며 해가 뜬다. 오늘 저 아이들의 열정과 함성과 환호의 기쁨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길 바라며 나에게도 좋은 시간을 갖게 해준 이 시간이 감사하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