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도전과 용기에서 승리해 본 적이 있는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엄마로 아내로 살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용기를 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고개를 젓게 된다. 나름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느라 고군분투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정작 용기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삶의 일상이었다.
넬슨 만델라는 용기를 단순히 두려움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임을 인정했다. 용기란 두려움이 아예 없어서 겁내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힘이라고 보았다. 두려움을 정복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행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두려움을 느끼되, 그 두려움이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제한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 것이라고 했다.
2023년 1월 1일 나는 대천 해수욕장에서 새벽 6시에 혼자 마라톤을 뛰었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남편 친구들과 부부동반 모임으로 간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고픈 마음에 마라톤을 뛸 계획을 세웠다. 결혼 후 지금까지 모임을 함께 한 남편 친구들의 부부동반 연말모임이라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만의 특별한 의식을 하고 싶었다. 2022년은 나에게 있어 특별한 한 해였다. 모든 것이 바뀌었고 마음 역시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1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새해 첫날 나만을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모임에서 함께 한 여행이라 무엇을 할까 생각을 했다.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그래 그걸 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라톤이었다. 여행 준비물에 마라톤을 뛸 편한 운동복을 챙기고 운동화까지 별도로 준비하고 여행을 갔다.
그리고 나의 다이어리에 '1월 1일 아침 6시 마라톤'이라고 목표를 정하고 '반드시 할 것'이라고 쓰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늘 순탄치가 않다. 연말이고 부부동반 모임이니 또 얼마나 즐거운가?
오랜만에 만나니 분위기도 좋고 술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이야기가 길어져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나는 나의 계획이 오늘 모임으로 못하게 될까 봐 식사 도중 일행들에게 알렸다. "저 내일 아침 6시에 여기 대천해수욕장 해변도로 마라톤을 뛸 계획이에요"라고 말하고 나니 더 걱정이 되었다. 따로 행동하기도 그렇긴 했지만, 새해 첫날의 계획이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계획에 친구 와이프들은 미쳤다는 반응이고 남편 친구들은 나의 야심 찬 계획에 함께 뛰어 주겠노라고 했다. 물론 믿지 않았지만 평소 마라톤을 좋아하는 남편 친구들이 있어 내심 조금은 기대를 했다. 그리고 가장 큰 목적은 나와의 약속이지만 스스로 지키지 못할까 봐 미리 선포를 해놓은 것이었다.
아침 5시 30분 기상 알람이 울렸다. 나는 어젯밤 조금의 기대를 했기에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만이 흐른다. 저녁에 미리 준비해 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창밖을 보니 1월 1일 새해 아침 찬 바람은 매섭고 춥기도 무지하게 춥다. 어둠은 짙게 깔려 있고 낯선 이곳은 여행지라 그런지 아무도 다니는 사람이 없다. 나는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어둠을 뚫고 나가야 할까를 수십 번은 생각을 했나 보다.
'다시 누워서 잘까? 어떡하지. 무서운데... 왜 아무도 안 다니는 거야?'
남편을 깨울까도 생각했지만 애초에 자기는 뛰지 않겠노라고 얘기하고 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고 말한 남편이라 깨울 수도 없었다.
'그냥 가지 말까?. 아니야. 어떻게 맘먹고 세운 계획인데.... 근데 진짜 무섭다. 어쩌지..'
혼자만의 독백과 함께 어두운 창밖을 보며 나의 고민은 30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어둠의 공포를 이겨낼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지. 그러다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3번의 숨을 쉬고 나니 조금은 나아졌다.
'뭐 죽기야 하겠어. 그냥 일단 나가 보자'
펜션 문을 열고 한 발을 떼서 나가니 겨울 바닷가 찬 바람이 나의 얼굴을 때렸다. 옷깃 사이로 추위가 느껴졌다. 마라톤을 뛰어야 되니 옷도 두껍게 입을 수가 없었다. 또 한 번 갈등이 생겼다. 이 추위에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마라톤을 하려고 하는 걸까? 이걸 안 한다고 문제 될 것도 없는데. 마음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저 황량한 바람만 메서 울 뿐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어떻게 나온 건데 저기 보이는 해변도로까지만 가보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몸은 떨리고 무서웠지만 해변도로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해변도로까지 가서도 나만의 독백은 계속 이어졌다.
'미쳤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복잡한 마음은 계속 됐지만 새해 첫날의 목표를 허망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뛰기 시작했다. 해변도로 중간쯤에서 시작해 오른쪽으로 뛰었다. 어둠은 늘 나의 용기를 갉아먹는 공포다. 나는 어둠을 극도로 싫어한다. 집에서도 불을 다 켜고 있을 정도로 환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이 어둠을 뚫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뛰면서도 나는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그래 일단 보이는 곳까지만 가보자'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또 그렇게 어둠만 있을 뿐이다. 고요 속에 흠칫 놀라기도 하고 굽어진 해변도로에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움에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그렇게 오른쪽 해변도로 끝까지 달렸다. 오른쪽 해변도로의 끝을 찍고 다시 턴 해서 오는 길은 그래도 한번 뛰었던 길이라고 생각보다 편해졌다. 조금 속도를 내서 뛰고 보니 마라톤의 시작점에 다시 왔다. 그리고 한 번의 갈등이 또 밀려왔다.
'이쯤 했으면 됐다. 어쨌든 뛴 거니까 이제 들어갈까?'
잠깐 동안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몸은 계속 달리고 있었다. 오늘 이 해변도로를 다 돌기로 했으니 무서워도 끝까지 가보자 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그렇게 남은 왼쪽 해변도로를 마저 뛰었다. 시간은 흐르고 왼쪽 해변도로를 끝까지 뛰고 턴 해서 올 때쯤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잔뜩 움츠린 몸들로 긴 롱패딩을 입고 무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와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왼쪽 해안 도로 끝을 찍고 다시 해변도로 중간 원점에 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로 더 이상 뛰고 싶어도 뛸 수가 없었다. 새해 첫날 아침, 날씨가 흐려 해는 바로 볼 수 없었다. 마라톤을 마치고 걸어오는데 건물들 사이로 빼꼼히 나오는 해를 마주했다.
'나는 오늘 나의 목표를 이뤘다. 나만의 용기를 냈고 그 용기에서 승리했다.'
그렇게 멋진 나만의 목표를 이룬 23년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한 해를 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용기를 회상한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고 압도하여 뛰어넘는 사람이다"라고 넬슨 만델라는 말했다. 나는 나의 용기와 맞섰고 도전에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는 그날의 용기를 생각한다. 그날도 어둠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두려움은 나의 생각일 뿐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이기는 용기를 몇 번이나 내 보았는가? 나는 그동안 두려움에 안전과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타협했다. 남편의 그늘에서 살려고 했고 불안전한 도전은 피하고 싶었다. 오십이 되면서 나 자신을 이겨낼 용기를 냈다. 그날의 용기는 분명 내가 살아가는데 나의 두려움을 이겨낼 무기가 되어준다. 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면 가슴이 뛰고 쿵 딱 거리고 마음이 요동을 친다. 아주 작은 도전에도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이겨낼 것을 안다. 오십의 나이가 되면서 나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들을 하나씩 찾아서 해본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닌 엄마로 아내로 용기를 냈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나아가 본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