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건강검진으로 첫눈을 만끽하지 못한 아쉬움에 첫눈이 내리는 날 밤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걸 언제 보았나라는 생각을 해봐도 가물가물합니다. 첫눈치고 역대급으로 내린 눈의 양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은 그냥 온전히 첫눈을 즐겨 봅니다.
화성에 공장이 있는 남편도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오늘은 회사에서 직원들과 자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예삿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언제 또 이런 눈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냥 나가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차라리 미끄러운 도로에서 집에 오느라 시간 버리고 고생하느니 회사에서 잔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 마음이 편안합니다.
눈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하얀 눈을 밟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밤 산책을 나가기 전에 무장을 하고 나갔습니다. 올 1월 일본 삿포로에 가려고 산 방한화도 꺼내 신고 롱패딩에 장갑까지 끼고 귀마개까지 하니 눈밭에서 굴러도 될 만큼 따뜻하고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눈을 피해 사람들이 다닌 발자국에 눈이 없는 곳으로 엉금엉금 걷지만 저는 눈이 쌓여 있는 곳만 찾아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어봅니다. 연실 내리는 눈발도 얼굴을 들어 맞아 봅니다. 눈이 와서 그런지 평소에는 늦은 저녁이라도 운동 나온 사람들이 많은데 오늘은 사람들도 별로 다니지 않습니다.
가로등 불빛에 연실 날리는 눈발만이 외로이 이 눈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이글루를 만드는 아이들도 보이고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들어갔는지 눈사람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밤 산책을 나오기 전 주방 창틀에 쌓여 있는 눈으로 나름 눈사람을 만들어 사진도 찍어 보고 저만의 겨울을 만나다가 이렇게 밖으로 나와 소복이 눈 내린 세상을 마주하니 더 아름답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내린 눈으로 여기저기에서 또 사건사고가 일어나겠지요. 밤사이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 많이 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이가 들면 눈 오는 낭만보다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요. 저 역시 오후 늦게까지 이렇게 눈이 많이 내려 다들 퇴근은 어떻게 하지하고 걱정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그런 걱정 내려놓고 또 막상 눈을 밟으니 역시 걱정보다는 즐거움이 가득한 눈 세상입니다.
어떤 것을 누리려면 온전히 그것을 즐길 준비를 하면 훨씬 더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의 저의 픽 방한화, 롱패딩, 장갑, 귀마개가 한몫합니다.
눈 오는 날 1시간을 넘게 산책을 하고 들어왔는데도 방한화, 롱패딩에는 물 한 방울 묻지 않고 깨끗합니다. 정작 일본 삿포로 갔을 때는 이런 리얼로 내리는 눈을 밟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오늘 제대로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 많은 눈으로 퇴근도 못하고 회사에서 자야 하는 남편과 딸에게는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냥 즐기는 것도 그렇지만 오랜만에 실컷 밟아보는 눈의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근심 걱정은 그냥 사라지는 듯합니다. 역대급 내린 첫눈으로 인해 내일 많은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