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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마라톤은 글쓰기와 닮았다

by 말상믿


어제는 17km 마라톤을 뛰고 왔다.

혼자 마라톤을 뛰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간다.


처음 3km 부근까지는 호흡도 안정이 안되고 몸도 다리도 무거워 오늘 목표한 킬로수를 뛸 수 있을까 생각하고 5km가 넘어가면 조금씩 호흡도 안정되고 근육도 풀리는 듯해 오늘도 무사히 목표한 킬로수를 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8km 정도 달리다 보면 러닝 하이를 느끼게 된다.


'러닝 하이'는 '러너스 하이'와 같은 의미로 특정 시간 이상 꾸준한 속도로 달렸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러닝하이에 대해 모르고 뛸 때는 그런 기분을 몰랐다가 알고 난 후부터는 이런 게 '러닝 하이'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가벼워지고 갑자기 속도가 나며 다리도 가볍게 느껴진다.


10km는 목표한 킬로 수다.

대부분 레이스를 시작하면 10km를 뛰고 멈추지만 가끔 오늘은 좀 더 뛰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더 뛰고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면 멈춘다. 오늘은 10km를 뛰고 두 번째 '러닝 하이'가 왔다.


마라톤은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많다. 종종 뛰면서 글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마라톤을 다 뛰고 나면 뛰면서 생각했던 내용들이 무색하게도 다 잊히고 없다. 그래서 가끔은 뛰다가 멈춰서 생각난 글들을 적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뛰다가 멈추면 다시 뛰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한번 시작한 레이스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마라톤을 뛰다 보면 마라톤은 글쓰기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글을 쓰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너무 힘들어 계속 못할 것 같지만 또 그럭저럭 100일을 이겨내고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1년을 넘기게 되고 1년을 꾸준히 쓰다 보면 계속 쓸 수 있는 근력이 생긴다.


요즘은 마라톤이 붐이다.

처음 내가 21년도에 마라톤을 뛸 때만 해도 공원에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10명 중 걷는 사람이 8~9명 정도이면 뛰는 사람이 1~2명 정도. 마라톤을 뛰면서 만나는 사람이 나 말고 1명 정도를 만날까 말까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체감상 6 대 4 정도 되는 것처럼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집 앞 원천천과 광교호수공원은 신호나 건널목 없이 마라톤을 뛸 수 있는 코스가 많다. 기본 거리가 10km는 나오기 때문에 마라톤을 뛰는 사람이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지도 모른다.


마라톤을 뛰다 보면 함께 뛰는 러너들의 속도에 반응하게 된다. 나는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한 번도 쉬지 않고 10km를 나의 페이스로 달리는 반면, 젊은 러너들은 빠른 속도로 나를 앞서 달려 나간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멈춰서 있는 그들을 만난다. 나는 다시 묵묵히 나의 페이스로 달린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마라톤에서 함께 뛰는 러너들의 속도에 반응하듯 빠르게 성장하는 블로거들을 보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시작한 이웃인데 언제 저렇게 성장했지라는 의아함마저 든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이웃을 보면 내가 문제인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꾸준히 나아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속도는 다소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멈추지 않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또 추월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한다.


힘들게 뛰는 마라톤에서 무슨 경쟁이며 비교냐 할 수 있지만 인간이기에 선의의 경쟁은 누구나 하게 된다.

그것이 경주와 대회가 아니더라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건 나의 성향인지도 모른다. 힘들게 뛰고 있을 때 나를 앞서갔던 젊은 러너들이 멈추어 걷고 있을 때 다소 느리더라도 추월하는 순간 '앗싸 내가 재쳤다'라는 마음이 드는 건 나의 속물근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레이스가 10km가 넘어서면 그런 생각조차도 안 들지만..


글쓰기도 비슷하다. 처음에 열심히 글을 써서 포스팅하던 많은 이웃들이 지금은 글을 쓰지 않는다.

1일 1포, 15분 글쓰기, 100일 글쓰기, 많은 것들을 하면서 글을 써왔지만 나의 페이스대로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한번 글을 쓰면 최소 1시간 이상이 걸리고 길면 2시간 넘게 써야 마무리하는 나는 15분 글쓰기를 하면서 유려하게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부럽다. 그리고 공감과 댓글이 많은 블로거들을 롤 모델로 삼고 그들의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는 정목 스님의 책 제목이 생각난다. 조금은 느릴 수 있어도 꾸준히 나아가는 것. 지금 마라톤을 뛰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나의 마음이다.


마라톤은 글쓰기와 닮았다.

나는 마라톤을 시작하는 시기와 글쓰기를 시작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코로나로 체력을 키우기 위해 마라톤을 먼저 시작했고 그 이후 글쓰기를 시작했다.


마라톤이나 글쓰기나 체력 없이는 힘든 경주다.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지루함, 고독감, 힘듦, 그리고 완주했을 때의 희열과 중독성까지.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는 것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우선순위에서 글을 쓰는 것과 매일 달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글쓰기도 마라톤도 초보 수준이다.

풀은 뛰어보지도 못했고 겨우 하프를 달릴 수준이다.

마라톤도 글쓰기도 완전한 맛을 모르는 지금이지만 시작과 그것들이 주는 맛을 알기에 나만의 페이스대로 나아가리라 본다. 너무 빨리 뛰려고 노력하다 보면 금세 지치는 게 마라톤과 글쓰기다. 이 두 가지 맛을 한 번에 알게 된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주변 경치를 보며 나의 몸에 집중하고 자연과 함께 오늘을 뛰고 있는 것처럼 매일 조금씩 기록하며 성장하는 글을 쓰다 보면 머지않아 풀을 뛰고 있는 나를 볼 것이고 작가로서의 행보도 조금씩 나아가리라 믿는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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