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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상믿 Jun 18. 2024

가족은 밥심으로부터

오랜만에 집안 공기가 훈훈하다.

저녁식사를 하며 다들 한 마디씩 거든다.

'와, 엄마 진짜 맛있어'

'오랜만에 땀이 제대로 나는데. 이거 봐 땀나는 거 봐'

'그냥 가려다가 엄마가 등갈비 김치찜 했다고 하길래 왔는데 잘 왔다. 역시'

이 분위기 뭐지...

그동안 밥 못 얻어먹은 사람들처럼 다들 저녁밥에 진심이다.



요 며칠 개인적인 일로 바빠 가족들에게 신경을 잘 못썼다. 큰딸이 감기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어제저녁 큰딸은 감기로 열이 나서 몸 상태가 안 좋은데도 출근을 했고 남편도 몸살끼가 있어서 온몸이 아프다며 몸살감기약을 먹고 출근을 했다. 분가 한 작은딸도 요즘 조금 피곤하다며 힘들어한다.

가족들이 너도 나도 아프다고 하니 나도 약간의 짜증이 났다.

다들 자기 건강관리하라고 운동하라고 해도 운동도 안 하고 아침에 과일을 챙겨줘도 배부르다며 먹지도 않고 출근하고 비타민에 각종 영양제 챙겨 먹으라고 해도 잘 먹지 않는 가족들에게 괜히 화가 났다.

감기가 그래서 온건 아닐 텐데 나의 마음속에

'그거 봐 내 말 안 들으니 다들 그렇게 감기가 오지'

'쌤통이다. 아파 봐야 말을 듣지'

저녁밥도 대충 먹고 집 비상약을 찾는 남편과 큰 딸이 조금은 한심스러웠다.

'엄마 집에 해열제 있지 않아?' '나 열나는 것 같아'

'여보 그때 근육 이완제 있지 않았나?

며칠 전에 약간의 감기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시답잖게 들었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던지 진료 보고 약을 지어오든지 하지, 돌아가면서 약을 찾는데 참 부녀관계 아니랄까 봐하는 것도 똑같아요.

지난 주말부터 개인 일로 바빠 저녁에 늦게 들어왔다. 

지인들 모임과 친구 약속으로 저녁을 먹고 늦게 들어와 집식구들은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각자 개인적인 일이 있지 않는 한 거의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 일상인 우리 집. 남편과 딸들은 내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며 밥을 먹을 때 항상 칭찬을 해준다. 새로운 반찬이 나오면 꼭 아는 척을 하며

'엄마 오늘 새로운 반찬 만들었네. 우와 이것도 맛있고 얘도 맛있네.'

'엄마 카레는 예술이지.'

'오늘 구내식당에서 밥 먹었는데 그렇게 맛이 없다. 

엄마가 해준 게 훨씬 맛있어'

특별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밥인데도 가족들은 칭찬 일색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남편이 아침밥 먹는 걸 좋아하고 가족들이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이 맛있다 하니 결혼하고 27년을 가족들 밥 주기 위해 요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다니..

아는 언니나 친구가 넌 요리하는 블로그 해도 잘하겠다. 음식을 맛있게 하니까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러나 나는 레시피가 없다. 뭐든 요리가 다 즉흥이다. 그날그날 기분 나는 대로. 넣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레시피 없는 요리라... 그냥 간장이나 소금 대충 넣고 파 마늘 넣고 생각나는 재료 넣고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거 조금 추가해서 간 맞추면 되는.... 이런 식이다.

며칠 동안 개인적인 일로 바빠 가족들 밥을 신경 쓰지 못했다. 아침밥을 차리면서 아픈 가족들에게 주는 밥이 너무 부실해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장을 보고 오후에 가족들이 좋아하는 등갈비 김치찜을 했다. 

계란찜에 감기 증상이 있는 가족들을 위해 야채샐러드도 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가족들 반응이 뜨겁다.

이건 뭐 자기들 아픈 게 내가 밥을 잘 안 챙겨줘서 아픈 것 마냥 저녁밥을 먹으며 한 마디씩 하는 가족들을 보니 웃음이 난다. 전날 아프다고 투정 부리는 가족들이 얄밉고 화가 나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오늘 밥심으로 화답하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내가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요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족은 밥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맛있는 밥을 먹였더니 남편은 설거지를 해주고 큰딸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건조기에 다 돌아간 빨래를 꺼내 개어준다. 작은딸은 보이차를 내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랭했던 우리 집은 다시 훈훈해졌다.

큰딸 작은딸은 밥을 먹고 또 각자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다시 일상을 살아가지만 언제든 힘들때는 가족과 함께하는 밥상이 있음을.. 그런 밥상을 줄 수 있어서 오늘도 감사하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합시다^^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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