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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생각

나는 장거리 마라톤이 좋다

by 말상믿


나는 장거리 마라톤이 좋다.

처음 러닝을 시작해 보면

장거리 마라톤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뛰어, '라며

절대 뛸 수 없다고 단정하기 일쑤다.


KakaoTalk_20250825_094207698.jpg?type=w773 5km 지점에서 버드나무와 파이팅 하며 통과


그러나 5킬로미터를 뛰고

10킬로미터를 뛰다 보면 알게 된다.

'나도 장거리 마라톤을 뛸 수 있겠는걸' 하는 용기가 생긴다.


나이를 먹으니 장거리 마라톤이 더 좋아진다.

마라톤을 뛰다 보면

익숙한 상황과 자주 만나게 된다.

뒤에서 젊은 분이

빠른 속도로 나를 앞질러간다.


내 속도는 절대 빠르지 않다.

그냥 내 페이스 대로 달릴 뿐이다.

가끔은 나를 앞질러

빨리 나아가는 사람을 보고 자극받아

조금 빨리 뛰어볼까 하고 힘을 내보지만

이내 쉽게 지쳐 다시 내 페이스대로 돌아온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뛰다 보면

또 익숙한 상황과 만난다.

조금 전 나를 앞질러 갔던

그분과 다시 만나게 된다.

나는 여전히 나의 속도로 뛰고 있지만

그분은 뛰지 않고 걷고 있다.

비록 뛰는 속도는 내가 그분보다 느리지만

나는 걷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계속 뛰었다.


이런 상황은 자주 만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약간의 쾌감이 느껴진다.

비록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한번 시작한 레이스는

내 페이스대로 달리다 보면

역전이 되는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훨씬 빠르게 보이지도 않게

지나가는 분들도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인상적이게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소설책으로만 읽다가 일종의 회고록 같은 책을 읽고 이 작가가 더 좋아진다.


아침 조깅 슈즈를 신고 달리기 시작할 때, 두발이 너무 무거워서 이제 영원히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거의 발을 질질 끄는 것 같은 느낌으로, 느릿느릿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빠른 걸음걸이로 산책하고 있는 이웃 아주머니들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참고 달리는 사이에 근육이 조금씩 풀리고, 20분쯤 되면 어떻게든 다른 사람처럼 달리게 된다. 차츰 스피드도 붙는다. 그 뒤로는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계적으로 달려갈 수 있다. 말하자면 내 근육은 시동이 걸릴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종류인 것이다. 제대로 움직이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더디다. 그 대신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꽤 긴 시간 동안 무리 없이 무난한 상태로 계속 움직일 수 있다. 전형적인 '장거리형' 근육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p129


아무튼 레이스에 출장해서 완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골인하는 것, 걷지 않는 것, 그리고 레이스를 즐기는 것,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목표다. p200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왔다. p228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마라톤을 뛰면서 힘들어 걷고 싶을 때면

이 말이 자꾸 생각난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p259


나이가 드니 확실히 단거리보다는

장거리에 더 유리하게 느껴진다.

빠른 속도는 내지 못하지만

자신의 페이스대로 멈추지만 않는다면

피니시 지점은 반드시 온다.


그 과정 중 어려움도 여러 번 만난다.

포기하고 싶고 걷고 싶은 유혹도 많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의미를 묻고 따질 때도 많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의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나는 또 승리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느끼는 쾌감이나 승리가

어떤 것보다도 짜릿하다.


평소 집 근처에서 마라톤을 뛰다 보면

내 페이스대로 뛰는 거리는

10킬로미터에서 15킬로미터가 적당하다.

횟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이 좋다.

하루 정해놓은 루틴에도 부담을 주지 않는 거리다.


10월 12일 나주 MBN 마라톤 대회에

풀코스 마라톤을 뛸 예정이다.

물론 처음 뛰는 거라

나의 한계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 도전이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한 번으로 끝나게 될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안다.

어렵겠지만 그 한계를 넘고 나면

나는 또 한발 성장해 있으리란 걸.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거라는 걸.


어떤 속도도 꾸준함을 이기는 것은 없다.

특히 마라톤은 끈기와 꾸준함 없이는

계속해서 뛸 수 없다.


인생도 마라톤에 비유하면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는 한

계속 뛰고 있는 장거리 마라토너인 것이다.


속도나 결과를 떠나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피니시 지점을 통과하면 된다.


나에게는 장거리 마라톤이

달리기 말고도 또 있다.

독서와 글쓰기다.

거기에 다이어리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미약하더라도

5년 후 10년 후의 나를 기대하며 오늘도 뛴다.

나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조금 늦어도 괜찮다.

매일 일정한 속도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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