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나?
주로 자기 계발서를 읽었던 내가
한 번씩 푹 빠져서 읽었던 소설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다였다.
몇 번 다른 소설책을 시도해 봤지만
읽다 흥미를 잃어 덮고 다른 책을 읽었다.
얼마 전 박경리 <토지> 전권을 구입했다.
너무 긴 장편소설(전권 20권)이라
도전하기도 쉽지 않고 읽는 동안 지루할까 싶어
다른 책과 병행하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기우였다.
하루 1~2시간 할애해서 읽으려고 계획했던 게
3일 만에 무산이 됐다.
토지 1권을 시작하고 며칠은 계획에 맞게
하루 1~2시간 읽고 덮었다.
그런데 3일이 지나고 마음과 달리
책을 한번 잡으면 덮을 수가 없다.
토지는 1부 1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도 많아서 주요 인물 계보도까지 그려져 있다.
말투도 경상도 사투리에 어려운 말들이 많아
처음 시작하면 잘 읽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빠져든다.
사투리에 투박하지만 섬세하고
복잡한듯하지만 세세한 인물 묘사와 관계
풍경 표현에도 금방 매료된다.
사실 토지를 드라마로 방영할 때는
그리 재밌게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남아
책을 읽으면서도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언뜻 어려울 수 있는 인물 계보가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다.
드라마의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없는데
책을 읽다 보니 장면이 그려진다.
아마 그 시절 재미있게 보고 기억을 못 하다가
다시 더 섬세한 표현의 글을 마주하니
기억이 새록새록 해지는 것 같다.
어제오늘 주말이랍시고
정해진 루틴들은 거의 접어놓고
조금은 안온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서재에 마련해 놓은 간이 소파에 누워
몇 시간째 뒹굴뒹굴 책을 읽고 있다.
원래 책상에 독서대를 놓고 읽다가
소설책이라 그런지 자세도 조금은 유연해진다.
한번 책을 읽으면 5시간이 넘도록
책을 놓지 못하고 있다.
책의 줄거리와 인물들을 요약도 하기 전에
다음 권이 기대가 된다.
"여자는 염치 불구하고 용이의 눈을 더듬어 본다. 풍만한 정기를 풀어서 용이 얼굴에다 설설 뿌리는 것 같은 웃음을 머금고, 그는 임신한 여자였을 뿐 어미가 아니었다. 음탕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이었다."
"니는 내 목구멍에 걸린 까시다. 우찌 그리 못 살았노, 못 살고 와 돌아왔노."
"어느 시 어느 때 니 생각 안 한 날이 없었다. 모두 다 내 죄다. 와 니는 원망이 없노!"
"서편에 해가 한 뼘쯤 남아 있었다. 어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지 빛과 그늘에 얼룩이 진 숲, 푸른 들판은 엷은 바람에 설레고 서두는 것같이 느껴진다."
읽다 보면 등장인물과 풍경 묘사에 빠져
책을 덮을 수가 없다.
물론 지금 첫 시작하는 단계라
저 많은 권수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질려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토지에는 700여 명의 인물이 나온다고 하니
읽는 도중 인물 파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인물 계보도까지
친절하게 그려주지 않았을까?
매일 하는 루틴이 있기에 너무 빠져 읽다 보면
그런 루틴들이 깨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주말은 조금 느슨하게 마음을 가져본다.
뭔가에 몇 시간째 집중해서 하는 행동이
싫지 많은 않다.
물론 다른 해야 할 것들을
모두 미루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며칠째 2권 2편까지 읽고
토지에 푹 빠져 있는 나를 만난다.
주말에 하려고 미뤄놓은 일들이 산더미인데..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텃밭 작물도 정리해야 하고,
그런데 토지 읽는 게 더 땡기니 뭐 어쩔 수 없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