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소리 없이 가을비가 내린다. 아침 공기도 서늘해졌다. 이번 비가 내리고 나면 더 완연한 가을이 올 것 같다. 어제까지도 여름 날씨 같더니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한낮 더위는 28도를 오르락거리고 이렇게 한 번씩 비가 내리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낮 기온도 18도로 내린다. 하루 만의 날씨 온도 변화라고 하기엔 차이가 너무 크다.
어제 나주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왔다. 긴장했던 것보다는 무사 완주했다. 가끔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도 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첫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라 다소 긴장이 되었다. 이번 마라톤 대회를 위해 나름 많은 연습을 했지만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장거리 마라톤이라 몸이 따라 줄까 걱정도 되었다. 무엇보다 전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번 마라톤을 위해 준비하느라 평소에는 뿌리지도 않는 멘소래담 스프레이를 전날 무릎과 발목에 뿌린 것이 화근이었다. 편의점에 이온음료를 사러 갔다가 멘소래담 스프레이가 눈에 띄어 평소 파스 알레르기가 있지만 뿌리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아 가볍게 뿌려준다고 생각해 구입했다. 저녁에 뿌리고 자면 다음날 통증이 덜 할 것 같아 뿌렸는데 그때부터 시작됐다. 무릎과 발목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시작되었고 그것을 참지 못해 긁기 시작해 결국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다음날 긁은 부위는 부어올랐고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몸을 생각해 평소와 다른 과한 행동은 이런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가려움은 더 심해졌고 아침 마라톤을 뛸 때까지도 밤새 긁었던 상처가 시려 걱정이 되었다.
막상 대회 날은 마라톤을 뛰기 시작하니 긴장해서 인지 가려움이나 상처의 따끔거림은 느낄 수가 없었다. 다행이다. 때로는 자신을 위한 행동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 결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것도 과정이라 생각하니 그런 과정을 통해 삶은 또 배움을 준다.
나주 마라톤 대회 날은 최고의 날씨였다. 아침 대회장은 비는 아니지만 박무 같은(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움) 뚜렷한 안개도 아닌 것이 수증기를 잔뜩 뿜은, 미스트를 뿌린 것 같은 흐린 날씨였다.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런 날은 마라톤을 뛰기 최적이다. 날씨도 선선하고 다소 습한 느낌은 있지만 아침부터흐려 해도 없고 미스트처럼 수증기가 공기 중에 흩어져 기분을 끌어올렸다. 거기에 대회장은 행사를 개최하는 행사팀의 음악과 나주 종합운동장 안을 가득 메운 마라토너들로 이미 분위기는 후끈했다.
마라톤 풀코스 도전을 위해 함께해 준 가족들은 머리가 젖고 옷이 습하니 가족들에게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마라톤을 뛸 나의 마음은 이런 날씨가 반가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날씨였다. 전날까지 가려움에 붓기까지 한 몸 상태가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날씨가 쨍쨍하면 땀을 많이 흘릴 테고 땀 때문에 짠 기가 느껴지면 분명 긁었던 상처 부위가 따끔거리기 마련이라 뛰는데 지장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날씨는 완벽했다. 영산강을 끼고 달리는 마라톤 코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시작되었고 도로변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거렸다. 영산강 주변이라 강 풍경도 좋았고 한산한 지방 도로라 그런지 시골 풍경도 달리는데 잠시나마 여유를 주었다.
첫 출발하고 12km까지 뛰는데 모두 나를 앞서 달렸다. 내가 앞서는 사람은 없었다. 코스가 하프코스와 같은 코스라 하프를 달리는 사람들은 빠른 페이스로 달리는 사람도 많았고 나의 몸 상태를 고려해 분위기에 힙쓸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평소대로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나 역시 오버 페이스가 나왔다. 평소에는 10km까지도 6분대 중반으로 뛰었지만 10km까지 5분 50대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으니 대회 분위기에 덕을 본 것은 맞다. 풀코스를 다 뛰고 생각해 보니 처음 페이스를 빠르게 달렸기 때문에 후반에 체력이 떨어져 천천히 달렸어도 시간 안에 완주한 게 아닌가 싶다.
총 5시간 뛰는 내내 3시간 까지는 날이 흐렸고 3시간이 지난 후 날이 맑아져 해가 쨍쨍해졌다. 딱 30km쯤 뛰었을 때 해가 나기 시작했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다. 날이 흐리다 해가 쨍쨍해지니 함께 뛰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걷기 시작했다. 걸었다 뛰었다를 반복하며 거리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다른 마라톤을 많이 뛰어보지는 않았지만 나주 마라톤은 대회 진행이 원활하게 느껴졌다. 3km 부분부터 급수대가 있었고 중간중간 급수대가 충분해 도움이 되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프 유턴하는 지점에서부터는 바나나와 초코파이 간식이 준비가 되어있어 중간중간 체력을 보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에너지 젤을 8km마다 하나씩 먹어서 그런지 간식은 당기지 않아 먹지 않았다.
30km가 지나고 해가 뜨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물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30km 이후부터는 급수대가 초반보다 더 없어 힘이 들었고 끝나는 지점이라 그런지 급수대는 있었지만 물이 없어 지급이 안되기도 했다. 어떤 급수대에서는 물은 있지만 컵이 없어 목마른 마라토너들은 생수병을 통째로 돌려가며 마셔야 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첫 이미지가 좋았는데 마지막까지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
물이 부족해 어떻게든 더위에 목이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에 물을 머금고 5km씩 뛰었다. 중간중간 한 모금씩 목에 넘기며 최대한 급수대에 물이 없더라도 목을 축이기 위한 나만의 방도였다. 페이스가 빠르지 않으니 코로만 숨을 쉬어도 충분했고 입에 물을 머금고 뛰니 오히려 숨 쉬는 것이 일정해지는 느낌이었다.
30km 부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걸었다.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역시 마음이 살짝씩 흔들렸다. 너무 힘든데 그냥 걸을까 생각도 하고 나를 이기는 도전에 무너지고 싶지 않은 강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30km 지점에서부터는 이미 숨은 트여 안정되었지만, 다리가 무거워 내가 뛰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정신도 흐려졌다. 런데이에서는 나의 페이스를 계속 알려 주고 있지만 뛰는 게 뛰는 게 아니었다. 대회장 분위기도 중요하다. 함께 으샤으샤하면서 뛰는 분위기면 힘들어도 조금 더 힘을 낼 텐데 사실 30km 이후 뛰는 분위기로 보면 나의 의지가 어디까지 인지 시험하는 무대였다.
풀코스 마라톤은 35km부터가 가장 어려운 구간이라고 했다. 정신적 맨탈이 흔들리고 체력적으로도 가장 힘든 구간이다. 이 구간을 뛰면서 집 앞 천에서 뛰는 거리를 생각했다. 남은 km를 집 앞 코스 km로 생각하니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는 남은 거리보다 매일 기분 좋게 뛰는 km를 상상하니 한발 한발 뛰다 보면 반드시 결승점은 온다는 생각에 풀코스 내내 단 한 번도 걷지 않았다. 물론 급수대에서 물이 없어 기다리는 잠깐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쉬었지만, 물을 마시고 뛰기 시작해 단 한 걸음도 걷지 않았다. 나를 이기는 도전에 걷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나의 정신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마라톤 첫 풀코스 도전에 나는 4시간 43분 39초로 무사 완주했다. 이번 풀코스 목표가 5시간 안에 무사 완주였으니 기록으로 보면 만족할 만한 결과다. 그것도 컨디션 난조로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완주는 최고의 성취감을 주기에 완벽하다.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연습도 많이 했고 그 연습으로 인해 시간도 많이 썼다. 지인에게 팁을 얻기도 하고 블로그에 과정을 기록하며 계획과 과정, 결과를 기록했다.
마라톤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에 휴게소에서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발뒤꿈치가 땅기고 아팠다. 집에 올라오는 내내 차에서 다리를 풀어주고 집에 와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30분 몸을 풀어준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걱정했던 것보다 아침에 일어나 몸 컨디션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이렇게 나의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은 마무리가 되었다.
도전이 끝나면 그 도전에 결과를 떠나 많은 응원과 축하를 받는다. 나 역시 주변 지인들과 내가 풀 마라톤을 준비한 것을 아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나를 위한 도전이지만 그 도전에 많은 사람들이 동기부여를 받고 용기 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도전에 마음을 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렵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그곳에는 결승점이 있다. 시작하면 결과가 어떻든 끝이 있다. 이번 도전이 나에게도 많은 용기를 줄 것을 안다. 앞으로 도전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또 용기를 낼 것이다.
풀코스 마라톤을 뛰는 내내 나를 이기는 싸움에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난 뒤 나에게도 신념처럼 달리는 내내 이 생각이 머리에서 떨쳐지지 않았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말자.
나의 첫 풀코스 도전에 남편 생일인데도 불구하고 신경도 못써줬는데 함께해 주고 바쁜 일정에도 시간 내준 딸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지금 여기에서 행복^^
"오늘도 성장"
- 말상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