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by 공존

진급한 소위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해 준 적이 있다. 그중 한 친구에게는 특별히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라는 재밌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동기들 중 가장 진지한 이 친구는 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복수 전공했다. 학군단 생활을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칸트의 순수이성과 원칙적 삶을 신봉한다 했다. 왠지 그의 DNA에는 웃음과 낭만이란 없을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이 진지남에게 실없는 웃음을 주고 싶었다. 칸트의 순수이성과 정언명령으로 무장한 군복 입은 철학자에게 가벼운 삶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책을 선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에게서 긍정적인 피드백이 왔다. 진지한 태도에서 힘 좀 빼라는 내 싸인을 읽은 것이다. 문득 내 사무실로 찾아온 그 친구는 변함없이 칸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평소와는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갑작스러운 청혼을 받은 칸트가 무려 7년 동안 결혼에 대해 사색하며 시간을 낭비한 이야기다. 7년 동안 깊은 사색을 통해 결혼에 대해 354가지의 유익과 350가지의 무익을 논리적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참 웃픈 이야기다.

작가는 이러한 무의미한 최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수 끝에 홍대미대 입학에 성공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정작 학교수업은 등한시하고 미술학원에서 알바만 한다.

삼십 대 초반,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꼭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삼 년을 헤매다 결국 포기한다.

마지못해 삼 년의 백수생활을 정리하고 또 다른 꿈을 꾸며 투잡으로 근근이 버티다가 역시 어떤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퇴사였다.

작가의 이러한 눈물겨운 투쟁은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술에 의지해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의 인생은 어린 작가에게 큰 두려움이었다.

아버지처럼 무의미한 삶을 살지 않으려는 작가의 처절한 몸부림이 안전하고 완벽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러한 삶이 절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작가는 칸트의 청혼에 대한 에피소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후회가 칸트의 그것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르게 살기 위한 고뇌가 때로는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작가의 고백은 결국 하마터면 쓸데없이 고민하고 인생을 낭비할 뻔했다는 자조 섞인 고백으로 들린다.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어야 한다. 이룰 수 없는 완벽한 선택(결과)을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조금은 부족하지만 아름다운 도전들로 채워야 한다.

마흔이 넘은 노총각에, 월세를 살며,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새로운 도전과 자유에 기뻐하며 일한 만큼만 얻을 수 있는 자유에 만족하는 작가의 삶도 나름 행복해 보인다.

그저 가벼운 웃음을 주려고 선물했던 책에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 세상 진지한 철학도가 왜 이 책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