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매년 정월 대보름엔 나물에 오곡밥 따뜻이 지어 아침 일찍 배달해 주시는 시어머님이 계신다.
아껴 두었던 곡식으로 알록달록 밥 짓고, 정성 가득 손수 뜯어말린 나물을 물에 불려 무치고 볶아
없이 살던 시절의 훈장이려나 차마 버리기 아까워 씻어 말려 두었던 1회 용기를 재활용한다.
소복이 음식 담아 꼭꼭 싸매고, 특유 무늬 알록달록 배낭에 잘 담아 둘러메고 새벽길을 나섰을 것이다.
슈퍼마켓이 무인점포로 바뀐 까닭에
귀밝이 술 사시느라 그 새벽 집 앞 24시간 무인점포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신다.
어떻게 들어가시는지 모르시기에..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들어간다.
어떻게 술을 사고 어떻게 계산을 하는지 모르시기에 점포 안을 두리번거리다
사람들 나올 때 문이라도 잠길까? 따라 나오기를 몇 번을 반복하셨을 칠순 어머님은
기어이 보름맞이 한상 풀 세트를 챙겨 잰걸음으로 30분 걸리는 아들네를 새벽공기 뚫고서 찾아오신다.
아들네 집은 입구부터 비밀번호가 기다린다. 녹록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 카드키 드리기를 잘한 듯싶다.
새벽 6시 30분 드디어 외향형 어머님의 씩씩한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진다.
주섬주섬 눈 비비며 부엌으로 가보니 싱크대 앞에서 해 온 음식 정갈하게 담아낸 후
전매특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주신께 비나이다. 이 집가족 모두 잘되게 도와주시고 우리 아이들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해 주십사...
어찌 보면 극성스러운 칠순 어머님의 사랑에 잠도 덜 깬 며느리 마음 깊은 곳이 따뜻해진다.
이런 뜨끈이... 가끔 씩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용기를 주니 말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의 패키지가 함께 해서 큰딸 어릴 때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며 손 비비며 놀던
추억 한 자락도 함께 만들어 주셨다.
가정의 화목을 돌보아 주시는 성주신이 우리 집에도 계신다면
우리 집 성주신은 어머님과 함께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