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서 전화를 못했어요.

위로의 방식

by 낮은자리 수니


발병 사실을 널리 공표하지 않아도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저절로 알려집니다. 혹은 어쩔 수없이 치료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하느라 알리기도 합니다. 대체로 뜻밖의 소식에 많이들 놀랍니다.


‘독감에 걸렸어요.’

‘위궤양으로 응급실에 다녀왔네요.’

‘치질 수술을 받았어요.’

그런 소식에는 보통 ‘저런! 고생 좀 하셨겠는데요?’ 정도의 반응입니다.

그런데 ‘암이래요.’ 그러면 대다수가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 물론 암이라는 질병이 치사율이 높아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심장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처럼 발병과 함께 즉시적인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요. 간혹 너무 늦게 발견되거나, 아주 급성인 경우를 제외하곤 치료하며 암과 함께 꽤 긴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지인들은 암 발생 소식에 당사자만큼이나 당황해하는 걸 보게 됩니다.


저의 언니들은 발병 소식을 들은 즉시 긴급 모임을 단체 sns에 공지하더니, 식당을 예약하고 보양식을 먹이며 위로의 시간을 마련하더군요. 그러더니 평균 2달에 한 번씩 식사자리를 만들어서 마치 나를 붙들고 앉아서 저승사자가 오더라도 접근조차 못하게 막기라도 하겠다는 듯 형부들까지 모두 모여 시끌벅적 밥 먹고 떠들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표준 치료 후 딱히 더 치료도 없고, 식이조절이나 약 복용 정도 관리밖에 할 것이 없던 때였습니다. 식단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였으므로 가족들과 식사자리에서 내가 먹을 반찬은 많지도 않았습니다. 언니들은 내 식사를 따로 준비해야 하고, 나는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는데도, 온 가족들이 못 보는 사이에 무슨 일이 나기라도 할 것처럼 만나왔지요. 심지어 제주도로 요양 차 한 달 살기를 떠났을 때는 2박 3일 시간을 맞춰 자매들과 조카들까지 제주도에 찾아와 있다가 가기도 했습니다.


또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일이 바쁜 사람들인데 하루 날을 잡아, 온갖 보양식을 싸들고 숙박을 하며, 새삼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벌써 몇 번씩이나 반복했던 발병 후 여러 상황들과 감정들을 새삼스럽게 또 나누며 서로 위로하며, 눈물지으며 긴 시간을 보내 제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지인은 발병 후 1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전화를 해 왔습니다. 어느 자리에 갔다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무서워서 전화를 못했어요. 너무 상황이 안 좋으면 어쩌나, 갑자기 울음이 터지면 어쩌나. 그래서 몇 번을 번호를 누르다가 말았어요. 오늘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얼마나 기쁘던지 전화드려요.” 그럽니다.


저도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남의 불행에 호들갑스럽게 아는 척하는 것 아닌가, 말 뿐인 이런 위로가 도대체 정말 위로가 될 것인가, 오히려 환자를 더 피곤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일 때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오면 답하기가 힘들 때도 있습니다. 물어보는 사람은 궁금하고 걱정돼서 물어보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이야기를 매번 반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쩔 때는 환자인 내가 상대를 위로해 주고 안심시켜 주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참, 누가 환자인지......


본인이 말하지 않는다면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큰 충격에 빠졌던 암환자들도 시간이 지나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주변을 살피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때 이야기를 들어도 되지 않을까요?

물론 많이 염려스럽고, 궁금하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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