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나를 무너뜨리는 무기는 될 수 없어
뻔뻔하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
무례하다 [행동이나 몸가짐이 올바르지 못하거나 예의바르지 못하다]
뻔뻔하고도 무례한.
너와 가장 잘 어울리는, 지금의 너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형용사.
극한의 상황에서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하더니, 감정을 배제한 채 바라본 너의 실체는 뻔뻔은 기본이고 거기에 무례하기까지 한 놈이란 걸 알겠더라.
아들의 졸업식 날.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부모까지 대동해 나타난 너를 보며, 그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아, 정말 이기적이구나.’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왔을거라는 생각, 그래 아주 잠깐은 했어. 부모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하지만 네 곁에 선 부모를 보는 순간, 역시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너는 그런 따뜻하고 애잔한 마음을 가지고 온게 아니라 그저 너를, 네가 저질렀던 행동이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는 걸 정당화시키기 위한 증인들을 데리고 온 걸테니까. 어찌나 재수가 없던지.
너한테 눈길조차 주기 싫었던 나는 아들에게 이야기했어.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 온 것 같으니 너가 편한대로 할 도리만 하라고.
작은 학교라서 발표회처럼 진행된 졸업식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사진 촬영을 하려는데, 넌 사진 찍어주시는 선생님께 휴대 전화를 건네더니 기다렸다는 듯 사진을 찍으러 나오더라. 세상 뻔뻔하게.
그 모습을 보고 아들에게 엄마는 나중에 찍겠다고 하고 자리에 다시 앉았더니, 내 뒷통수에 대고 “그냥 찍어.”라고 말하며 지나가던 너.
그 짧은 한 마디에 뭔가 상황도, 감정도, 경계도 모두 무시된 기분이 들어서 정말 너무 불쾌했다. 순간, ‘이 새끼 진짜 뭐지?’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 했다.
역시 이기적인 너.
그런데 이기적이라는 말로 너를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온순하고 배려하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찾아봤더니,너의 태도에 딱 맞는 이름은 “뻔뻔함과 무례함”이었어.
너밖에 모르는 아주 뻔뻔하게 미친 놈,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간.
네가 찍으라고 하면 내가 가서 찍을 거라고 생각했나?
왜? 남들 보는 눈이 있으니까?
그런 거 따지는 건 너고. 난 이혼말고는 너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할 생각이 없어서 남들 시선 따위, 상관없어.
그런데 뻔뻔하고 무례한 건 너 뿐만이 아니더라.
어찌저찌 마무리를 하고 아들에게 차에서 기다린다고 하고 얼른 식장을 빠져나오려는데, 네 아버지가 꽃다발을 내밀며 내 이름을 부르더라. 그것도 세 번이나.
나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어.
고개를 돌리지도,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못 들은 척하며 그 곳을 빠져 나왔어.
무시로 보였겠지만, 이미 선을 넘어 버린 사람들에게까지 예의를 베풀 필요는 없기에 내가 선택한 행동이었어. 네가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했을지 모르겠지만 같이 당당하게 얼굴 들고 온 걸 보면 아주 작은 헤프닝처럼 꾸며 댔을 거라는 생각이 들던데, 나의 태도를 보고 부디 너의 가족들에기 상황의 심각성과 나의 의사가 잘 전달되었기를 바랄 뿐이야.
차로 돌아가며 왜 네 어머니는 가만히 있었나했더니 우리 엄마한테 세상 무례하게 굴었더라고. 다른 자리 놔두고 굳이 엄마 옆자리에 앉더니, 인사라고 한다는 소리가 ‘수고 많으셨지요?’
와, 수고 많으셨지요?!!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도 개의치 않는 사람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니까. 뻔뻔함이 내력이었나보구나.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텐데.
넌 참석을 못한 우리 아빠에게 안부 전화인 냥 전화를 걸어, 나와 우리 엄마의 태도를 지적했더라. 너도 우리 엄마한테 인사도 안했으면서 그런 걸 우리 아빠한테 말할 수 있다는 게. 기가 막히고, 어의가 없을 뿐이다. 무례를 저질러놓고 예의를 논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 일인데 말이야.
그렇게 하면 뭐가 달라지니? 네 마음이 편해지나?
넌 상황을 바로 잡으려는 태도는 전혀 없고, 어떻게해서라도 나에게도 흠집을 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런데 넌 방향을 잘못 잡았어.
뻔뻔함과 무례함 따위로는 나를 무너뜨릴 수 없어.
나는 이미 그보다 훨씬 큰 무너짐을 겪어봤고, 그 시간은 아직도 진행 중이거든.
그래서 이제 너의 태도는 나를 흔드는 무기가 아니라, 너를 떨쳐내는 판단의 근거, 명백한 증거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