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삶의 시작이 '탄생'이라면 삶의 끝은 '죽음'일 것이다.
내가 '죽음'을 처음 마주한 순간은 할아버지의 임종이었다. 병풍 뒤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는 세상 평온한 모습이셨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난 들리지 않을 인사였겠지만 할아버지 곁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던 기억이 있다. 얼굴에 손을 살짝 갖다 대었을 때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고, 무섭게만 여겨졌던 죽음이라는 순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순간 아름다운 이별처럼 여겨졌었다.
그 날 이후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렇게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순간들이 예고없이 찾아올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마주한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친한 친구의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말로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너무 아팠고, 너무 아쉬웠고, 너무 그리웠다. 한 동안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눈물이 시도때도 없이 흘렀다.
친구와 함께 갔던 곳을 지나쳤을 때.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기일마다 찾아갔던 친구의 나무를 보았을 때.
여전히 마음 한 켠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자꾸만 울컥 올라온다. 누군가의 죽음이 이렇게도 내 마음을 파고들 줄은 몰랐었다.
그런데, 난 또 다른 이름의 '죽음'을 10여 년전부터 마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혼이라는 단어 앞에서야 깨달았다.
아주 가볍고도, 비열하게 '죽고 싶다'는 말을 던지던 너.
그 때는 그 말이 삶을 포기하겠다는 절박한 고백으로 들렸기에 많이 무서웠지만, 괜찮은 척 더 담담하게 널 위로하고, 감싸주려했고, 내가 더 이해하면 괜찮아질거라 믿었었다. 내가 더 참으면, 내가 더 낮아지면, 내가 더 사랑하면 위태로운 시간들도 곧 지나갈 수 있을거라고 그때는 어리석게도 생각했었다.
지금까지 너와 했던 메세지를 거슬러 읽어 올라가다보니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 2016년부터 시작되고 있더라.
넌 그냥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그 말에 벌벌 떨고, 한없이 낮아지는 내 모습을 보고 생각했겠지. 조금이라도 불리하거나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구나하면서.
스스로 자책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멈춰 서게 된다. 내가 왜 그리도 한없이 포용하려고만 했는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질까봐 나를 세우기보다는 너를 붙잡는데 온힘을 썼던 지난 날의 내 모습이 너무도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넌 모든 것이 드러난 그 날에도 죽어버리겠다며 쇼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메세지로 나와 아들에게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마지막 메세지처럼 남겼었지.
넌 아무 고민없이 내 마음을 이용할 수단이었을 그 가벼운 메세지에 그 때의 난 멍청하게 ‘정말 그러면 어쩌지’하는 마음에 아들만은 지켜달라는 메세지를 남겼었어.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
거기에서 멈췄다면 그냥 너의 생쇼로, 처절한 몸부림으로 생각했을거야. 하지만 넌,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날 흔들기 위해 아들에게까지 그런 문자를 보냈고. 난 너와의 이 싸움에서 반드시 아들을 지켜내야겠다는 의지가 더 단단해졌어.
아들에게 부끄러운 메세지를 보내놓고, 뭐? 다시 교회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나님이 사랑하니까?
이제는 정말 욕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넌 하나님이 죄악으로 여기는 선택을 할 것처럼 하면서 정작 아들한테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니?
스스로는 가장 극단의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아이에게는 순종과 믿음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아이러니를 넘어 잔인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같았으면 혼자서 끙끙 앓았겠지만 이제는 나 대신 싸워 줄 사람이 많기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아. 담당변호사에게 대응할 방법을 문의했더니 일사천리로 알아서 대응을 해 주시더라. 덕분에 아들도 널 차단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네가 말하는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무너지지 않아! 이제는 네가 가볍게 던진 말을 내가 무겁게 받아낼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