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진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니?“
아들의 졸업식이 끝나고, 네가 보낸 메세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나에게 묻고 있는 걸까.
너야 말로 꼭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문자로 남기는 메세지와 실제 행동이 너무도 다른너를 내가 더 이해해야 할 이유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내가 보낸 소장을 받고 나서 철저히 낮은 자세로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었지. 메세지로는. 그런데 넌 세상 기괴한 답변서를 보내왔어.
그래놓고 답변서에 쓴 내용은 변호사들이 쓴 말이라며 우리끼리 만나서 얘기를 해야겠다고? 변호사들이 무슨 소설가도 아니고, 기본 소스는 제공을 해야 그들도 이야기를 쓰는거라는 걸 소장을 보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니 네 문자에 답조차 하기 싫은거야.
그리고 “우리끼리”라니?
언제부터 우리가 ‘우리’였지?
‘우리’라는 단어는 함께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지, 너처럼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야. 그리고 ‘우리’라는 단어로 너와 묶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불쾌하다는 거.
또, 알고 싶지도 않은 너의 가족들 아픈 소식을 알려 오더라. 그래도 말해야할 것 같다면서. 왜? 내가 왜 알아야하는데? 그런 이유로 내가 널 걱정할까봐서? 안쓰럽게 여겨주길 기대했겠지. 하지만 진심으로 아픔을 전하는 일과 그걸 이용하는 일은 다르기에 네가 기대한 ‘연민’의 마음조차 들지 않아.
심지어 넌 그 사실을 아들한테도 보냈더라.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라면 넌 그런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을거야. 그런데 넌 지금 누구보다 네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니까 너만 생각하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어. 이 혼란의 상황에서 안정을 찾기에도 힘든 아들에게 넌 또 하나의 걱정을 얹어 주는 게 과연 아빠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 싶다. 그래놓고 보고 싶다고? 빨리 만나고 싶다고? 진짜 그런 마음이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네가 보내는 메세지가 언제쯤 멈출까하는 생각을 할 때쯤 넌 또 날 흔들 수작으로 추가 소송을 걸어오더라.
변호사를 선임했기에 소장을 내가 받지않아도 되는데 중간에 주소 변경 신청을 해서 굳이 우리 부모님이 받아보게끔 했다는 말을 듣고 너의 밑바닥을 드러내는구나 싶었어.
담당 변호사님께서도 별개 소송으로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주소 변경 신청한 일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시는거면 쓸데없는 일에 가깝다는 뜻이겠지.
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행동이겠지.
지난번 답변서를 읽을 때와는 달리, 네가 보낸 소장을 읽을 때는 큰 감정의 동요가 없더라. 아마도 거짓이 뒤섞여 있을 거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역시나 내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증거 자료라며 첨부한 사진들을 보면서는 노력이 참으로 가상하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으니까. 이제는 네가 어떤 수를 쓰고 있는지 빤히 보이고 있다는 거.
그래서 더 이상 네 뜻대로 휘둘리지 않을거야.
네가 흔들고 싶은 판 위에 난 서 있지 않거든.
난 네가 만든 판에서 멀찌 감치 떨어져서 조용히 기다리거 있을 뿐.
그러니 더 이상 애쓰지마.
어차피 진실은 변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