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차이

너와 나의 거리가 좁혀질 수 없는 이유

by 미소

분노.


모든 게 사실이라는 걸 알았을 때.

사과가 아닌 뻔뻔함으로 적반하장인 태도를 보였을 때.

기괴한 이야기가 담긴 답변서를 읽었을 때.

아들에게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일삼았을 때.


그 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사이에서 ‘분노’는 내 마음 속에 생각보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분노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위협을 당하는 등 여러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또,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치고 있으니 상대의 위험을 제거하고 싶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내 마음 속 분노도 같은 이유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 하다. 그 새끼에 대한 어떤 감정조차도 느끼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분노가 차오른다. 이 감정을 대체 어떻게 해야 잠재울 수 있을까.


아직까지 분노하는 게, 겉으로는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마음 한켠에 미련이 남아서 일까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던 중, 브런치에서 우연히 <분노의 의미>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할 때 ‘분노’와 ‘공포’의 감정이 나타나는데, 내가 그 공격을 이길 수 있어 보이면 ‘분노’로 표출되고, 이길 수 없어 보이면 ‘공포’로 표출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내가 느끼고 있던 분노의 정체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분노의 감정 앞에 더 이상 괴롭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나의 분노가 상대의 공격을 이길 수 있기에 느껴지는 감정이라면 얼마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분노하는 건, 정말 누가봐도 타당한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너는 왜 분노하는걸까?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무섭게 분노하던 너.

증거를 내밀지 않으면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할 기세로 뻣뻣하게 고개를 세우더니 ‘정리하자’는 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넌 물건을 집어 던지고, 헐리우드 액션을 선보였지. 그러곤 짐을 싸서 나가겠다고 아주 당당하게 온 집안을 분주하게 왔다갔다했었고. 그 때 너를 분노케 한 건 들켰다는 사실이 컸겠지. 더 완벽하게 속이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의 표출로 보였거든.


또, 아들에게도 나에게 했던 것처럼 감정팔이하며 네 잘못을 희석하려고 했을 때도 넌 분노를 감추지 못하더라. 아빠인데 아들 보러 가는 게 뭐 그리 잘못이냐며. 그래서 내가 똑똑히 짚어줬지. 넌 여전히 네 방식대로 생각하고, 자기합리화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고. 중요한 건 아들의 마음을 살피라는 건데, 넌 네 마음대로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쏟아놓고 있었어. 부모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더라.


지금도 넌 억울해하며 분노하고 있겠지.

겉으로는 ‘힘들다, 아직도 사랑한다, 반성하고 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게 너무 뻔히 보이고 있으니 말이야.

부부의 정조 의무를 반하는 행동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이럴까 싶을테고, 또, 마음이 아픈 너를 살피지 않은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하는 걸 보면 네 마음은 분노로 가득차 있다는 게 느껴져.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모두 거짓임을 알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문득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너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을 사실인 양 믿고 싶은 너는 아마 더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너의 분노는 너 스스로 감당해야할 몫이라는 걸 명심해! 그리고 너의 분노가 의미있는 분노가 되려면 분노의 대상이 부끄러운 너 자신일 때라는 것도!!



‘신뢰’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였을 땐, 서로의 다름이 매력으로, 내가 채워주고 싶은 공간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를 느끼는 모습조차 다르다는 걸. 그렇기에 그 어떤 것도 이제는 같아질 수 없음을 알고 더 이상 나의 울타리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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