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소장을 읽고 나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쯤은 알겠거니 싶었는데. 넌, 역시나 기대 이상이더라. 애초에 그런 기대를 한 내가 어리석었던거지.
한 달 이내에 제출해야하는 답변서를 한 달이 되기 하루 전 날에 보내왔더라. 그것도 아주 기가막힌 이야기를 담아서.
15장 빼곡히 보냈던 내 소장과는 달리, 너의 답변서는 고작 7장이더라. 앞뒤에 법무법인 소개랑 변호인단 구성표를 빼면 5장 뿐인 너의 답변들.
간혹 드라마에서 뻔히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변호하는 변호사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저 일을 선택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장면을 화면이 아닌 현실에서, 그것도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답변서를 읽을 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올랐다. 같은 말을 교묘히도 돌려 놓고, 거기에 거짓말까지 보태어 쓴 글을 읽으며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았다.
답변서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는 친정엄마가 평일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에 챙겨 보시는 드라마 속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감정이입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드라마를 왜 보냐고, 실제로 저렇게나쁜 놈이 있겠냐고 하면서 잔소리를 했던 내모습이 오버랩되며 헛웃음이 나왔다.
‘현실이 더 잔인할 수 있구나.
다 가능한 일들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 말은 많지만 내가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답을 하겠다면서 시작 된 너의 답변서.
심각하게 오해를 하고 있다고?
할 말이 많다고?
너의 답변서 곳곳에 단어 몇 개로 진실을 희미하게 덮어보려는 흔적들이 보이더라.
부부 간의 정조 의무라는 말을 답변서에 어떻게 적을 수 있었을까? 아무런 증거 자료도 없으면서 네가 지어낸 스토리를 판사들이 믿어줄 거 같니? 더러운 불륜 스토리를 아주 인간미 넘치는 만남 스토리로 적어 놓고는 마치 그런 행동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것처럼 꾸며 놓은 너.
거기까지는 그래, 숨기고 싶겠지, 잘못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 싶었겠지, 하며 그냥저냥 읽었는데, 그 다음은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야기를 써 놨더라.
너의 그런 추잡한 행동의 이유에, 감히 나의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더이상 분노조차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어. 넘치는 변명과 계속되는 거짓말 속에서 너라는 인간의 바닥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으니까. 더 너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놓고 결론은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처참히 파괴한 사람이 다시 지키겠다고 말하는 게 기이를 넘어 기괴하게 읽히더라.
이어지는 양육권 문제는 또 어떻고.
유대 관계가 깊어서 니가 키워야 된다고?
그건 과거의 이야기고, 지금은 그 유대 관계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으니 다시 생각해 봤어야지.
사업을 해서 시간적 여유가 많아 서포트할 수 있는 환경이 나보다 낫다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그 년이랑 어울릴 시간이 많았겠지. 그동안 어떤 지원을 했는지 말할 수도 없는 인간이. 그리고 그 맥락에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지원이 빠져있었어. 너의 의도가 이제는 빠삭히 읽히더라.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경제적 지원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마저도 나에게 숨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준비 서면을 준비하면서 알아 가고 있거든.
여전히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는 너의 태도에 확고한 내 결심이 더 단단해지더라. 아주 단단하다못해 딱딱하게 굳은 콘크리트처럼.
주변에서 이혼소송은 진흙탕 싸움이라더라, 인간의 바닥을 보게 된다더라 하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알게 해 주고. 여러 모로 고마워하고 있어.
난 이제 너의 답변서가 소설임을 밝히기 위해 열심히 준비서면을 써 내려가고 있어. 어느새 스무쪽을 채워 가고 있는 지금, 스스로도 놀란 만큼 차분하고 재미있기까지 해.
왜냐고?
결국 마지막에는 내가 웃고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