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까지가 바닥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너의 선택 앞에서 나는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by 미소

지난 글에, 지금의 시간들을 이겨 내려고하기보다 버텨내려고 하는게 맞는 것 같다는 한 분의 댓글이 있었다.

그 말을 읽으면서 뭔가 마음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그 동안 이겨내야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다’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걸 보면 그런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아직 기일도 잡히지 않은 시간들이 다시금 버겁게 느껴지고, 이겨내야 할 시간이라 생각할수록 마음이 지쳐갔던 것 같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한 분이 남겨 주신 댓글이 순간 큰 위로가 되었다. 앞으로 이 시간들을 어떤 마음으로 지나가야 할지, 조금은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게 처음에는 조금 두렵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을 그대로 꺼내 놓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장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글들이 나의 마음을 더 솔직하게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어떤 감정인지 알아 차리게 되었고, 내 안에 묵혀 두었던 감정들이 글을 통해 밖으로 흘러 나오면서 그것들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해소의 순간을 느끼기도 했다. ‘글쓰기는 배설의 과정과 같다’는 말이 이제는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또, 같은 주제의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도 나와 같은 시간들을 지나고 있구나, 이렇게 마음을 추스리면 되는구나 하면서 힘을 얻기도 한다. 때로는 따스함이 느껴지는 댓글에 마음이 조용히 다독여지기도 한다.


누구인지 모르는 누군가도 이렇게 힘이 되어 주고 있는데, 끝이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더 이상 친정에 머무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아 아들 학교 가까운 곳으로 집을 얻어 나오기로 했다. 때마침 딱 맞는 집을 만나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한 달 남짓 남은 기간 동안 세간살이들을 하나씩 준비해 가고 있다.


그러면서 내 명의로 여전히 빠져나가고 있는 가스비와 인터넷 사용료를 보면서 정리해야겠다 생각했고, 정리해도 괜찮다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 그 즉시 해지를 신청했다.


인터넷은 일시 정지를 신청하면 된다고해서 바로 신청을 했고, 도시 가스는 기사 방문이 필수라고 해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우선 신청은 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집에 아무도 없을 상황을 대비해 퇴근 후 집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차가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 전화를 기다리다가 문득 ‘혹시 비밀번호를 바꾼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눌러 보았지만 맞지 않았다. 순간, 뒷골이 땡기며 다시 화가 밀려왔다. 출입 비밀번호까지 바꾼 걸 보면 집 비밀번호도 이미 바꿔놓았을 것 같았다.


몇 분 후, 기사님이 도착하셨다는 전화가 왔고 기사님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우선 호출을 해보시고 열어 주지 않으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다행히 일은 잘 처리가 되었다고 기사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계속 신청한 사람 이름이 누구냐, 언제 신청한거냐를 물어봐서 이름만 말씀드리고 다른 건 모른다고 했다고 하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얼른 다시 집으로 향했다.


정말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주변에서 도와주고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언제 신청했는지를 왜 물었을까 생각해 보니, 변호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전달 받은 날짜보다 그 이전에 신청한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내가 실수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테니까.


비밀번호는 왜?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내가 연락이라도 할까봐? 아님 내가 언제 올지 모를 상황을 대비할 일이라도 있는건가? 이유가 뭐든. 그래, 이제는 남일이니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너의 바닥인걸까?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끝이 아니었나보다.


이제는 즐기면서 버티기로 했으니 너의 끝이 어디일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음을 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하나씩 더 배워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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