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통해서 본 종교적 디스토피아
공화국연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역사책에서만 보았던 신탁과 반탁의 갈등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우리는 현시대에 다시 눈으로 목도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그 시대에 못지않은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각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틀림없이 악에 속한 무리라고 믿는다. 여기에서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큰 문제다. 사람이란 집단에 소속하게 되면 상대를 개인이 아닌 적의 일부분으로 인식한다.
인류 역사에는 전쟁이 계속되었다. 과거에는 부족과 민족, 국가가 전쟁의 단위였다면 현대에 와서는 이념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과연 그 이념이란 것이 상대를 적대시하고 죽여야 정도로 중요한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결국 이념이란 것도 권력자가 권력과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것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세를 규합하기 위해 적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원더풀랜드>에 나오는 내용은 충격적이다. 미국이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극에 달해 둘로 나누이고 끊임없는 테러와 첩보전쟁을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한 국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원더풀랜드의 줄거리이다. 주인공 샘 스텐글은 '연방공화국'소속의 정보원으로서 '공화국연맹'을 상대로 첩보수집과 암살임무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이복동생을 공화국연맹의 정보원으로 마주하게 되고 싸워야 하는 얄궂은 운명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남부와 중서부를 중심으로 한 공화국연맹은 보수적 기독교원리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이다. 이들은 '12사도'라는 종교지도자들의 신탁으로 다스리는 나라이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은 원래 청교도가 세운 신정국가이며 기독교가 정치이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슬람원리주의 국가들의 모습과도 같다.
미국동부와 서부를 차지한 연방공화국은 진보적 공화정을 정체로 한다. 국민의 평등권과 복지, 문화 예술을 중요시하는 사회주의국가에 가깝다. 이곳을 다스리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모건 채드윅이라는 자본가이다. 그는 채드윅칩을 개발해 전 국민에게 삽입해 감시체제를 완성했다. 평등 대신에 자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두 개로 갈라진 나라는 서로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상대를 악마화하고 끊임없는 체제 공격을 가한다. 이 모습은 과거 냉전 시기의 독일을 연상하게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분단과 체제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체제가 더 좋은 것일까? 보수적이고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흐름이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에는 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그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껍데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허상을 쫓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들의 공허한 싸움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전쟁을 하나보다.
미국의 기독교에는 '신사도운동'이라는 흐름이 존재한다. 사도적 권위와 권능이 현대에도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언자라는 권위를 내세워 기독교를 선교한다. 기독교근본주의에 성령운동이 결합한 형태이다. 12사도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설정은 이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연방공화국의 채드윅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일론 머스크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지금 공화당의 편에 섰다가 다시 트럼프와 틀어진 것은 묘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연방공화국은 이곳을 과학기술과 복지를 내세워 국민을 통제하는데 그 권력자가 자본가라는 사실에서 아이러니하다.
소설에 나오는 국가들의 모습은 <1984>나 <멋진 신세계>의 디스토피아를 닮아있다. 기독교원리주의자들은 기독교 이념으로 국민을 통제한다. 진보주의자들은 기술로 통제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빅브라더'이다.
보수주의 정치이념의 철학자 에릭 뵈겔린Eric Voegelin은 “종말론을 내재화(immanentize the eschaton) 하지 말라"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진보 이념들이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는 말이다.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신적인 질서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실례가 2차대전의 파시즘과 공산주의이다.
그런데 <원더풀랜드>의 유토피아를 내세운 연방공화국뿐 아니라 공화국 연맹조차도 기독교라는 절대적 이념으로 다스린다는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결국 또 다른 파시즘과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뵈겔린의 통찰은 무한성과 유한성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내재된 모순을 보여준다. 뵈겔린은 인간은 신성을 지니고 있지만 유한한 존재라는 점에서 초월성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분열이 인간의 본래적 속성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듯하다. 인류역사의 제국들은 모이고 흩어진다. 우주와 사물, 생명의 본성 또한 그러하다. 분명한 것은 세계의 질서는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그 어느 체제도 완벽하지 않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물장즉로(物壯則老), 모든 것은 변화한다.
Spirit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17장 20,21절)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지 않은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거짓 선지자와 권력을 탐하는 종교지도자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인간은 모두 수정란에서 시작되듯 분열은 인간의 천성이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역사는 분열과 파열의 긴 대하소설이다. 모두들 커플로 분열되고, 가족으로 분열된다. 국가로 분열된다. 우리는 서로 상대를 탓한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고 함께할 수 없다며 문을 닫아 잠그는 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인간의 조건이다. 살아가는 건 나뉘는 것이다. 저자의 말 510